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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Jul 21. 2022

오래된 가게가 되고 싶지만



각자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사전에서 장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그 문장을 나에게 빗대어 본다. 나이는 일단 맞다. 한국 나이로 마흔 한살이니까. 장년의 범주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기운이 왕성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요즘 기운이 달린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자면 늘 피곤한 편이다. 피곤함은 내가 평소에 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감각이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지만, 오전 일곱 시에 카페를 오픈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잠이 조금씩 부족하다. 그런데도 자영업을 하므로 영업시간은 지켜야 한다. 그 때문에 챙기는 건강식품이 제법 있다. 처음에는 하나만 먹었는데 지금은 매일 먹는 약이 몇 개는 된다. 이른 새벽잠을 깨기 위해서 빈속에 홍삼을 먹고, 스트레스 예방을 위해서 홍경천을 함께 삼킨다. 스트레스가 넘쳐서 주위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이틀마다 한 번씩 알약으로 된 노니와 아사이 베리를 먹는다. 평소에 과일을 먹을 여유가 없기도 하고, 피로회복과 안티에이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챙긴다. 점심을 먹고는 비타민 B가 많이 들어가 있는 종합 비타민을, 소화를 위해서 유산균을 먹는다. 저녁에는 약을 많이 먹어 간에 무리가 갈 것 같아 밀크 티슬을 먹는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나서는 격일로 프로폴리스를 챙긴다. 걸리면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챙겨줘야 한다. 이 정도면 기운이 왕성할 법도 한데, 실제로는 겨우 일상을 유지할 정도다.

  그래도 겉으로 볼 때는,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이지 정해진 루틴 속에서 꾸준하게 움직인다. 오전 여섯 시 이십 분쯤 카페에 도착해서, 테라스에 의자를 빼고 가게를 정돈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아침 식사 대용인 미숫가루를 마시는 것도 중요하다. 빈속일 때 손님이 오게 되면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몸을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커피를 두 세잔 먼저 마셔줘야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의식을 행하듯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열 두시까지 혼자서 일한다. 주문받고,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하고 테이블을 닦고 그런 것을 반복한다. 주로 오는 손님은 정해져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이 대부분이다. 출근길에 차를 잠깐 세워놓고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가지고 가는 경우, 아니면 산책로를 걷다가 피곤한 다리를 쉬기 위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은 등교시켜놓고 해야 할 일이 가득한 집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돈된 어떤 공간에서 쉬기 위해 오는 주부도 있다.

  그들이 앉아서 주문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내가 끼니마다 삼기는 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도하듯 머그잔을 잡고 골몰하는 모습이나, 창밖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나,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손님들이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빈 잔만 남게 된다. 나는 다음 손님이 오기 전에 잔을 치우고 의자를 정돈하고, 테이블을 닦는다. 떠난 사람이 남긴 흔적을 지우며,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하는 일상을 상상하기도 한다.

  때때로 들어올 때와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카페인이 주는 활력의 휘발성을 알고 있다. 그들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과업과 피곤이 커피 덕분에 진정으로 가벼워지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지만, 모른 척 일한다. 그리고 피곤하지 않은 척 프로페셔널한 척 오후에 출근한 직원과 함께 다섯 시까지 왕성하게 움직인다. 앉아서 쉬는 순간은 거의 없다. 지치면 물을 마시거나 스트레칭을 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고 저녁에 오면 손님들처럼 또 다른 일상으로 향한다.


지키고 싶은 일상


  텅 빈 집에 도착하면 고양이가 나를 맞이한다. 부푼 꼬리를 세우고 부르르 떨면서 반겨준다. 바짓단에 엉덩이를 비빈다. 그러면 나는 피곤하지만 놀아줄 수밖에 없다. 조금 놀아주다, 밥을 안친다. 쌀을 정수에 씻은 뒤 밥솥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압력솥에 김이 빠지고 거실 가득 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퍼져갈 때쯤 현관문이 열린다. 아빠라고 부르는 두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조금은 지친듯한 아내가 함께 들어온다.

  저녁은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지만, 때때로 새로운 출발지처럼 느껴진다.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한다. 가깝게는 두 딸이 먹고 싶은 것을 듣고 다음 날 저녁 메뉴를 정하기도 하고, 멀리는 언젠가 가게 될 여행지를 정하기도 한다. 더 이상 도약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 속에서 서글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두 딸의 인정 덕분이다. 약속하게 되면 두 딸이 하는 말, “아빠 고마워”라는 말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름대로 장년 노릇을 한 것은 나를 굳건하게 믿어주는 누군가가 생긴 뒤부터였었다. 청춘의 시절에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사라는 꿈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도, 내 미래를 믿어주는 사람이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카페의 바리스타가 되었고, 그렇게 십 년 넘게 이 일상을 겨우 지켜내고 있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도처에 있는 평범한 삶인 듯하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카페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인테리어처럼 각자의 사연이 있고, 서로 다른 배경음악처럼 각자가 지켜내고 있을 존재가 있을 것 같다. 업종이 다른 가게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와 일상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번 돈을 쓰게 된다면 아무래도 동네에 있는 가게에서 쓰려고 한다. 직원에게 선물하는 책을 살 때는 동네 서점을 이용하고, 어쩌다 외식할 때는 산책 할 때 보았던 식당에 들어간다. 마트도 큰 곳보다는 동네에 작은 편의점을 이용한다. 거기에서 그들과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안부를 묻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인사하고 잔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과정이 살아간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서글픈 것은 오래가는 가게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렇고, 간판들도 그렇고, 어느 순간 사라지고 한동안 빈 곳으로 남게 된다. 대게는 새로운 가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곳에 들르는 것이 한동안 꺼려진다. 그것은 사라진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언젠가는 벌어질지도 모를 일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빚을 끼고 삼십 대 초반 시작했던 이 작은 가게 덕분에 제법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아직 차는 그대로이지만, 두 딸은 자라서 둘 다 초등학생이 되었다. 투룸에서 시작해서 트럭 한 대로 충분했던 살림도 이제는 꽤 늘어서 두 딸에게 줄 방도 생겼다. 그런데도, 내려놓은 듯하지만, 어느새 돋아나는 걱정이 있다. 언제까지 이 카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걱정이 나의 기운을 갉아 먹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약을 먹어도 그런 생각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식들에게는 내가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어느 정도 희망을 품고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아내에게는 당신만 사랑하겠다고 말했던 그 언약을 지키는 것, 남들이 조금은 부러워할 만한 월급을 줄 수 있는 사장이 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내가 꿈이 거창해지거나, 세상이 말하는 기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때로 그 표준의 삶이 나에게 힘겨운 것이 되는 날이 올까 무섭다. 그래서 걱정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 울타리에 구멍이 생기고, 결국 함께하는 이들이 나의 곁을 하나둘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두렵다. 그런 그림자 같은 마음을 숨기는 일이 나이 든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마음을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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