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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Oct 27. 2022

절반의 가을 소풍




온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말은 “서우 언니 부러워”였다. 온이는 아직 몸을 일으키기 전이었고, 그 목소리를 들은 고양이만 서온이 발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뭔 소리고 싶은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온이는 여전히 누운 채 잠꼬대처럼 “서우 언니 부러워”를 반복했다. 자기도 언니 친구 생일 파티에 가고 싶다는 뜻이지 싶었다.


나는 웃겨서 남은 잠이 달아났다. 그 길로 물 한잔을 마시고 후드티를 걸친 채 동네 빵집을 향했다. 너무 일찍 가서 그런지 빵집에 빵은 없고, 굽는 냄새만 가득했다. 냉장 매대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랐다. 닭가슴살 샐러드, 작은 샌드위치가 네 조각 들어있는 팩 하나, 잉글리쉬 머핀 하나, 모닝빵 한 팩을 골랐다.


돌아와서 먹을 준비를 했다. 내가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아내는 식탁에 접시를 두고 포크를 준비했다. 아내는 나무 스푼으로 누텔라 잼을 가득 퍼서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작은 접시에 올려놓았다. 사 온 빵과 집에 있던 우유로 아침을 먹었다. 먹고 나서 나는 식기 세척기를, 아내는 세탁기를 돌렸다. 두 기계가 돌아가는 오전 내 우리는 빈둥빈둥했다.


서우가 집을 비우는 동안 뭘 하지 할까 하다가, 남은 가족은 진해에 가기로 했다. 뭔가 지나치게 특별한 이벤트를 하면 서우가 서운할 것 같고, 온이에게 아무런 이벤트를 해주지 않으면 파티에 가지 못한 온이가 서운할 것 같아서였다. 명절에 뵙지 못한 큰아버지도 뵐 겸 해서 진해를 목적지로 정했다.


날씨가 좋아서 큰집보다는 여좌천을 먼저 걷기로 했다. 조금 놀다가 앉고 싶을 때 큰집에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늙고 굵은 벚꽃 나무가 줄지어 있는 여좌천은 초가을도 낭만적이었다. 꽃은 당연히 없지만, 잎이 낙낙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그늘진 곳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오래 걸어도 땀이 맺히지 않았다. 천을 걷다가 <내수면 생태공원>에도 들렀다.


그 공원은 서우가 아기였던 시절이 왔던 적이 있었다. 아직 온이가 태어나기 전이었고, 나는 아직 흰머리가 덜했던 시절이었다. 온이와 처음 왔기 때문에 나는 평소보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수면에 비친 빛 때문인지 아내도 평소보다 더 이쁘게 보였다. 오래된 나무의 기둥이 곧게 설 수 있도록 구도만 잡으면 어떤 사진도 그럴듯하게 나왔다. 온이도 오랜만에 주인공인 된 심정으로 열심히 포즈를 잡았다.


거기서 한참을 머물다가, 큰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 앞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사촌 형에게 전화했다. 안부를 묻고 문이 닫혀서 포도만 놓고 온다고 이야기했다. 뭔가 아쉽기도 했지만, 피곤할 아내를 생각하면 또 괜찮은 흐름이다 싶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서우에게 연락해서 혼자 집에 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서우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벌써 서우가 그렇게 많이 컸구나 싶었다. 나는 온이에게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물었다. 온이는 신나는 하루였다고 했다. 나는 흘러나 오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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