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다

by 정인한



한동안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사람은 확고한 마음이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도 주체적인 글을 쓸 수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무심결에 읽은 글이 가벼운 나를 무겁게 지배했다. 두려움과 불신이 담겨 있는 문장을 읽으면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갔다. 글도 그랬고 표정도 그랬다.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불안한 표정을 완전하게 숨기는 것은 어려웠다.

두려움을 숨기기 어렵다는 것이 지난 몇 주 동안의 고충이었다.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흘러가는 길목에서 장사하는 소상인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사실, 평상시에도 상인들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팔아서 이익을 남긴다. 숨기는 것은 피곤, 불안, 우울 같은 것이고, 파는 것은 음식, 커피, 옷 같은 것이다. 나쁜 것을 숨기지 못하면 장사가 잘 안된다. 그래서 적게 팔면 몇 주를 곤궁하게 살고, 잘 숨겨서 많이 팔면 비교적인 여유가 있는 몇 주를 살 게 된다.

아무래도 두 딸이 태어나고, 나는 매출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밤마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생기고 그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선물해주고 싶은 욕망이 강해질수록 그랬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주체성을 잃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감정만 다스리고 손님의 마음을 우선하는 것이 어떤 날은 고강도의 육체노동보다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설적으로 가게가 낡아갈수록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왜냐하면 손님들은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한 사람들로 한정되어 갔기 때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들렀던 손님들은 멀어져 갔고, 우리의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했다. 그럴수록 조금씩 카페는 조금 더 자유로운 공간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강박적으로 숨기지 않고도 커피를 팔 수 있었고, 의도치 않게 드러난 상처는 손님들이 오히려 다독여 주었다. 주기적으로 꽃다발을 선물해주거나, 간식을 챙겨주는 손님들도 생겼다. 결국 우리도 많이 남기는 것보다는 덜 남기는 것이 도리어 마음이 편한 지점에 다다랐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한동안 카페가 한산해지자, 손님들이 위로를 건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매장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그러니, 원두를 사 간다는 손님이 제법 있었고, 나에게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하는 단골손님도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드러난 눈빛 속에서 마음들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빈부를 뛰어넘어서 누구나 불안하게 사는 세상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나만 잘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내 가족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고파는 것과 내뱉는 감정과 들숨과 날숨조차 결국 전부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에 이르러서야, 각자도생의 어리석음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된다. 어쩌다 내 손에 쥔 작은 행복만을 지키면 결국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잊을만하면 재난 문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도착한다. 나는 두 딸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읽고 지운다. 그리고 치유되길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마도 이 질병도 약이 개발되면 독감처럼 여겨지리라 생각한다. 결국은 수습이 되리라. 카페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거리에 음악이라도 흘렀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속 열고 있다. 부족하더라도 믿고 따라주는 스텝들을 바라보면서, 격려해주는 손님들의 언어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두려움을 숨기고 애써 드러내는 따뜻한 마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완연한 봄은 오리라.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어떤 미래에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없을 때, 그저 내 마음만 잘 다스리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온다면, 며칠 정도는 동화 같은 날들이 이어질 것 같다. 그런 날이 온다면, 돈이 있든 없든, 남녀노소를 떠나서 한동안 함께 공존하는 작은 축제가 마을마다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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