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은 우리 부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편이다. 어떤 날은 밥을 먹으면서, 아니면 수변에서 산책하다가 뜬금없이 그런 고백을 툭툭 던진다. 또 다른 날은 혼나는 와중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데, 그러면 잔뜩 뿔이 나 있던 내 마음이 한풀 꺾이면서 스스로가 옹졸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순간은 온전한 밤일 때, 듣는 그 말이다. 모든 전등이 꺼지고, 암막 커튼으로 도시의 불빛도 소거된 깜깜한 밤에 듣는 그 말은 우리의 하루를 그렇게 규정해버린다. 그것으로 완벽히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피곤했던 사건도, 하나도 정돈되지 않는 거실도, 너무 한가해 버렸던 카페의 하루도, 그것으로 완결된다. 충만한 하루가 된다.
사실 아빠 노릇을 하게 된 것도 그 말 덕분이다. 서우가 아무 말을 못 할 무렵, 아직 온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은 의무감에 아이를 안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집에 오면 아내는 힘들어 보이는 날이 많았고,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소총보다 가벼운 여린 아기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면서 군 생활보다 덜 힘드네, 할만하다고 위안했다. 수시로 깨는 밤잠도 불침번에 빗대서 썩 힘들지 않게 넘겼다.
아내가 피곤한 것은 어쩌면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비싼 비타민을 사다 주거나, 원두를 집으로 나르는 것으로, 이따금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나는 좋은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단정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 자체가 어리석다는 증거다. 그 시절을 묵묵하게 혼자 감당했을 아내에게 아직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음은 어쩌면 과분한 그녀의 기다림이 만들어줬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하고 있으면, 문자 알람이 수시로 울렸다. 아내가 보내준 정제된 일상이 나에게 전해졌다. 엉망진창인 거실에서 또 다른 물건들을 끄집어내는 서우의 모습이라든지, 장난감을 가지고 히죽거리면서 웃는 딸의 표정을 보내주곤 했었다. 먹고 재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젖병을 물고 있는 모습, 잠든 모습도 자주 보내주었다. 아마도, 짧디 짧은 낮잠 시간이 아내에게는 재빨리 자기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서우는 음식을 얼굴에 바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이유식을 하게 되면서, 이유식을 얼굴에 세수하듯 발랐고, 걸쭉한 요구르트를 맛보면서 그것으로도 세안했다. 그런 사진으로 도톰한 화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아내의 사진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을 가꾸기에는 너무 할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기는 잠시 화장실에 가는 엄마를 멀리는 있는 공원에 마실 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집에 들어가면 나를 어떻게 이렇게 반갑게 여길 수 있을까,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과분한 기다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아마도, 아내 덕인 것 같다. 아내는 부재중인 아빠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이다. 아빠는 지금 커피 만들러 갔어. 서우야, 아빠 오면 목말 태워달라고 하자. 아빠 오면 산책하러 가자. 아빠 오면 치즈 사러 가자. 아빠는 그렇게 서우의 마음에 새겨졌다. 아내 덕에 무심한 나는 목마가 되었고, 산책이 되었고, 치즈가 되었다. 결국 그것이 쌓여서 말이 되어 나에게 들렸던 날을 기억한다. 그 짧은 영상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빚는 어떤 격언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나의 부재중에 그렇게 새겨졌고, 결국 그녀의 입술로 읊어졌다. 무심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연애할 때, 언제 처음 그 말을 내가 그녀에게 했을까. 아마도 작고 빛없는 방이었고 둘이 있을 때, 수줍게 고백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인데, 아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는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어서 그랬던 적도 있었지만, 아내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게 끄적였던 적도 많았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염려했던 나날도 많았다. 나는 가진 것이 얼마 없었고, 나에게 잠시 머물러 있는 것 중에서는 그녀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수시로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었다. 나도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듣고 싶어서.
하지만, 딸의 고백은 나보다 견고해서 기특하다. 의심이 없고,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처럼 온전하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를 그렇게 인정하게끔 만든다. 오히려 내가 그 마음을 지켜줘야 하는데, 나의 변덕이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모난 말을 하는 나에게 속삭이는 딸의 사랑 고백은 분명히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의문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해서, 요즘은 그날이 흐리든 맑든, 밤에는 그 말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한다. 이불처럼 꼭 안아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후회할 일은, 헤픈 고백이 아니라 무심히 흘린 세월일 것이다.
과거의 어떤 날에는 나는 모든 것이었던 아빠였지만, 점점 아니게 된다. 두 딸이 닿는 세상이 넓어졌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난다. 이제는 그들과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어떤 짧은 모험을 떠난다. 어느새 나는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소거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두 딸은 하루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 세상에 가족만 남았다고 느껴질 때, 그 적막을 뚫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제는 그 고백에 매달려서 우리가 살아가는 느낌도 든다. 그것이 오묘한 신의 섭리 같다. 그리고 이 길 끝에 썩 괜찮은, 우리에게 과분한 엔딩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