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길 건너편 나무만이 무성했던 몇 주를 보냈다. 잔잔한 바람에도 나뭇잎은 성실히 돌아가는 실외기처럼 팔랑거렸다. 한산해진 거리에는 노년의 여유가 보였고, 산 아래의 큰 도로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청년의 속도로 오직 직선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다. 신선하지만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에 앉아서 그런 것을 구경하는 날들이 많았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무더웠던 시절이 있었던가도 싶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문을 편히 닫지 못하고, 창을 잠시 닫았다 한들, 코와 입을 가리고 있으니 얇은 셔츠가 제법 두껍게 느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그것도 고마운 것은 어찌했든 먹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을 감추고 서로를 환대하는 만남이 간간이 이어졌다.
그런 짧은 만남에 기대거나 함께 일하는 스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들이 주문을 받는 것은 다시 되뇌면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렸다. 한산한 시간에는 서로의 일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S의 이야기 속에, G의 이야기 속에 미래를 열어갈 열쇠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 연약한 믿음에 기대면 하루는 그렇게 또 흘러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 것 없지만, 시간은 언제나 성실하게 흘렀다.
S는 독립은 준비한다고 했다. 본가를 떠나서 작은 아파트에 새 둥지를 튼다. 원래는 우리 카페를 봄에 그만두고, 새로운 카페를 열고 싶었는데 그것은 무산되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고, 몇 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겹쳤다. 지금 상황이 되고 보니,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오픈을 했는데 이런 시국이라면 여러 가지로 곤란했을 것이다.
G는 나와 비슷하게 아내에게 종속된 삶을 산다. 이른 새벽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밤에는 고양이 혹은 아내와 논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잡혀 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G도 그렇고, 어떤 영화의 대사와 비슷한 삶을 산다. 우리는 우리에게 명령할 것을 각자의 아내에게 허락한 것이지, 결코 잡혀 사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자주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 어김없이 퇴근한다. 사실 요즘 같은 상황은 재정이 마이너스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내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퇴근한다. 직원들의 삶도 있고 나의 삶도 있기 때문이다. 수입이 꽤 줄어서 더워도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것도 호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늘 한밤중이 되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어스름한 새벽에 작업복이 들어 있는 가방을 챙겨서 세상으로 나가곤 했다. 아마도 가족 전체의 삶을 위해서 그렇게 했으리라.
그래도, 서우만큼 작을 때 그런 것을 무수하게 보아서 그럴까. 근면이라는 코드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내가 일터를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가고 또 그곳에서 땀을 충분히 흘리고 온다면 그렇게 며칠은 살아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진다.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이라고 여기고 있다.
바로 옆 동에 처가댁과 처형 댁이 있지만, 저녁은 꼭 아내와 서우와 온이 이렇게 네 식구가 먹으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하루를 온전히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것 아닌 것에도 맞장구를 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내가 말을 해주면 두 딸은 믿는다.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토막 난 돈을 가져다주면서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운데, 아내도 또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또 그것을 나는 믿는 척하고, 그런 눈빛이 쌓이면 진심으로 믿게 된다.
예전에는 놀이터에 아이들이 보여야 나갔는데, 요즘은 없으면 나간다. 그것이 서글픈데, 그래도 온이는 그네를 마음껏 탈 수 있어서 반기는 눈치다. 너무 오래 밀어주는 편이라, 요즘은 놀이터에 나갈 때 목장갑을 하나 챙겨서 나간다. 서우는 줄넘기를 몇 개씩 하고, 내가 던져주는 공을 배드민턴 라켓으로 치면서 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뜨거운 아스팔트는 조금씩 식어가고 땀으로 젖은 옷이 각자의 몸에 맞게 딱 붙는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렇게 딱 붙어서 의지하고 싶은데,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S에게 그리고 G에게 살아가기에 궁색하지 않은 급여를 안정감 있게 주고 싶다는 것. 그리고 아내와 두 딸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바늘구멍인데 꼭 합격하고 싶은 어떤 시험과도 같다. 나는 낙타 같은 면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통과할지 싶다. 그런 고민을 종종 한다.
그래도 존재가 존재를 이끌어준다고 믿고 있다. 각자의 두려움은 숨긴 채 서로의 두려움을 식혀주고 자신은 또 그만큼 남몰래 두려워한다. 그러면 실외기처럼 그것을 감당한 존재는 서글퍼지겠지. 그러다 막막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밤은 미세한 온도의 변화, 공기의 습함, 바스락 거림이 민감하게 느껴진다. 괜히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보름으로 향하는 달이 보인다. 어두운 부분이 진짜일까, 밝은 부분이 진짜일까,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그사이에 무엇이든 왕성하게 자란다. 그것이 어떤 거리의 나무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우리의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아닐까, 문뜩 믿게 된다. 함께 존재하는 것이 서서히 여물어가므로 믿게 된다. 그 마음은 마치 어떤 형태의 버블 같다. 구름 혹은 부풀어 오른 빵, 하늘거리는 커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