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나에게 절대로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했는데, 가을이 오고 스르르 잎이 떨어지듯이 어느덧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좋은 일이다. 그녀가 사랑을 주고받으니, 자연스럽게 하품이 줄었다. 동그란 눈은 반달이 되었고 목소리에도 활기가 생겼다. 그런 모습을 보니 카페의 흐름은 여전히 느슨하지만, 나도 힘을 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며칠 동안 카페에서 그런 기분 좋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이런 시간 뒤에는 무엇이든 여물겠구나 싶어서 덩달아 함께 설레는 며칠을 보냈다.
예전에 그녀가 쑥쑥 크고 있는 서우와 온이를 보면서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나고 있는데, 자신은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뭐라 말을 건넬 수 없을 정도로 서글펐는데 그녀는 그것을 알까 모르겠다.
혼자 행복한 것보다는 함께 행복한 것이 더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이지 않거나 혹은 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 슬픔을 보인다면 마땅히 함께 나누는 것이 옳은 것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른 카페보다 조금 더 주는 급여가 해결책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좋은 성분을 담은 영양제로 대신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더 서글픈 서사를 담은 소설이나, 성공의 방법을 담은 자기 개발서나, 세상의 이치를 담은 철학서도 정답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방법도 적당한 방도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날은 더 열심히 커피를 만들고 얼음을 푸고, 더 성의를 다해서 테이블을 닦았다. 아마도 Y는 아내를 만나기 전의 나와 비슷하지 싶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곳은 어렵사리 들어간, 나의 두 번째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그때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출근했고, 쉬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마을 도서관에서 임용시험 준비를 했었다. 수업이 있는 날, 공강 시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교육학책을 읽었거나 소설을 읽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그 학교의 사서 교사였다.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100번대의 철학서부터 900번대의 역사서까지 무수한 책이 꽂힌 서가를 배경으로 그녀는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보물처럼 안고 이곳저곳을 사뿐히 누볐다. 그 모습은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학생들이 나를 얕잡아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열패감에 휩싸인 그저 그런 못난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떻게 아내와 내 손이 닿게 되었는지, 그러다 닿은 손을 잡게 되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다만, 나는 그녀의 손에 닿기 전에, 닿게 되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잡으리라, 그리고 반복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렇게 혼자 사랑을 했었다. 혼자 앓다가 책을 베게 삼아서 엎드려 있었었는데, 어느 순간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곳까지 손이 닿아서 연애를 시작했다. 그 작은 순간을 시작으로 삼 년이 지나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구원 같은 사랑을 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더 사는 것이 힘겹다고 느꼈던 시절에도 길은 있었는데, 그것도 결국은 관계였던 셈이다. 몇 번의 우정과 몇 번의 사랑을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나누게 되고 더불어 짐을 나누게 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Y가 맺은 그 인연이 그렇게 오래도록 힘이 되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Y의 연애와 별개로 카페에도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보내는 인연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새로운 맞이하는 인연에 대한 부담도 있다. 그것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일터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다. 만남과 헤어짐, 우리 공간을 둘러싼 관계가 거듭될수록 이면도 단단해졌으면 한다.
별것이 아닌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더 땀 흘리고 예의를 갖춘다. 그렇게 하면, 그 관계 속에서 새로 여물어가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 키가 더 자라는, 카페 평수가 넓어지는 기적은 없겠지만, 속에서 함께 나눌만한 작은 열매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서우와 온이도 높은 하늘, 계절의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서우는 얼마 전에 첫 이갈이를 했다. 아내는 그것을 어떤 보물이라 생각하는지 보관함까지 사들였다. 온이는 여전히 나에게 놀아달라고 매달리고, 허락 없이 어깨 위에 올라간다. 온아 무겁다, 나도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고 엄포를 놓아도 온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무던한 반복이 수긍이 되는 것은, 이 순간이 나에게 오기 전에, 한없이 원했기 때문이지 싶다. 허리에 매달린 아이들이 열매 같다. 아내와 나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바랜 잎은 떨어지고 짙어가는 열매가 실해져 간다. 어느덧 그런 계절 속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