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위대한 유산, 샹티이 성

북쪽의 베르사유 - Château de Chantilly

by 빠리누나

샹티이 Chantilly는 불어로 휘핑크림이라는 뜻이다.

파리에 와서 처음 가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크레페를 사 먹었을 때,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

달콤한 유제품에 대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열풍 덕분에 휘핑크림은 16세기 루아르왕조 시기부터 맛보기 시작했지만,

18세기에 샹티이 지역에서 개최된 파티에서 샹티이 크림에 대한 이야기가 그 이름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샹티이는 처음엔 그저 각종 디저트에 사용되는 크림이었다.




샹티이성을 만나다

베르사유궁전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샹티이성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처음 사전조사 없이 방문한 샹티이성의 전경을 보자마자 아름다운 광경과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내가 고성 방문에서 성에 관한 책을 산 곳은 지금까지 샹티이 성이 유일할 것이다.


왜 왕자의 유산인가?

젊은시절 오말공작의 초상화

중세시대부터 19세기까지 다양한 성중 의해 형성된 샹티이성의 역사는 프랑스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샹티이성은 항상 왕족에 속해 있었고, 왕족과 가까우면서 라이벌이기도 했으며, 당시의 성주의 취향 따라 건물의 모습이 변화하였다.

특히, 샹티이성은 루이필립의 5번째 아들인 앙리 오를레앙(또는 오말 공작)이 마지막 소유주였기에

성의 곳곳에 오말공작이 깊이 새겨져 있다. 오말 공작은 일생동안 이곳의 유산과 이전의 성주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830년 7월 부르주아 세력은 오를레앙가의 루이 필립을 왕으로 추대하였고,

1830년 당시 8살이었던 오말공작은 그의 대분인 콩데공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샹티이성의 소유주가 되었다. 또한 그는 1840년에는 알제리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했으며, 1847년에는 알제리의 총독이 되면서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일에 공헌하였다. 다양한 정치적 군사적 활동을 하면서 그는 귀중한 서적, 그림, 예술품들을 모아 당대의 가장 위대한 수집가가 되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프랑스를 떠나야 했지만, 자신이 사망하면 샹티이 성과 박물관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1886년 자신의 유산을 프랑스에 기증한다.

오말공작의 뜻에 따라 샹티이성은 콩데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1898년부터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수집품들의 전시와 성의 모습은 19세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샹티이성의 보물들

샹티이성의 고전 회화작품들은 프랑스에서 루브르박물관 다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간 샹티이성에서 라파엘로의 삼미신을 보았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왕자의 서재였는데,

오말 공작이 수년동안 모은 서적과 고문서들을 보며 작은 서재에서 박물관 못지않은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샹티이성에는 총 60,000권의 서적과 문서들이 있고 그중에 19,000권이 이 서재에 보관되어 있다. 이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1500권의 원고와 17,500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워낙. 귀중한 서적들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라 그동안 방문하면서 보존이나 점검등의 문제로

이곳을 못 들어간 적도 있다.

베르사유 궁전에 거대한 거울의 방이 백미라면

샹티이성은 디너테이블 세팅을 재현해 놓은

다이닝룸을 백미로 꼽고 싶다. 당시의 귀족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식기들과 장식을 보면서 화려한 디너파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천장은 역대 성주들과 가문의 문장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다른 고성들처럼 실제 거주공간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도 있고,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어,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한 번은 그림의 조예가 깊은 분과 함께 방문하면서 그동안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갤러리 속 작품들이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고전 작품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다.


매력의 끝, 왕의 마구간

본성은 빠져나와 경마장 쪽으로 이동하면 왕의 마구간에 마련된 말 박물관과 실제로 기르고 있는 말들을 볼 수 있다.

왕족과 귀족에게 말이 단순한 애완동물을 넘어서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자신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을 아주 자세히 보여주는 곳이며 문명 초기부터 인간과 말의 관계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말 박물관이다.

18세기 건축가 장 오베르(Jean Aubert)가 설계한 이 대형마구간은 자신이 말로 환생할 것이라 믿었던, 콩데(Condé)의 7대 왕자 루이 앙리 드 부르봉(Louis-Henri de Bourbon)을 위해 건축되었다.

현재는 이곳에서 기르는 말들로 승마를 배우거나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최애 고성이 되다

고성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성을 묻는다. 샹티이성을 만나기 전까지는 쉬농소를 가장 좋아하는 성으로 꼽았지만

지금 현재는 샹티이성이 최애이다.

사실 쉬농소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더 자주 방문하지 못해서 아직은 짝사랑에 가깝지만 샹티이성은 정말 소개하는 나 자신이 뿌듯한 위대한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이제 샹티이는 나에게 더 이상 휘핑크림이

아니라, 파리에 여행 오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하는 훌륭한 관광명소이자 나의 최애 고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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