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르강변 주변 고성으로 시작한 나의 고성사랑은 파리 주변의 고성까지관심이 넓혀졌는데, 정작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방센성은 최근에야 방문한 것이다.
항상 가까운 거리의 고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놓고정작 방센성을 가볼 생각은 못했던 게 스스로 너무 웃겼고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방센성을 방문하였다.
지하철역 출구 나오자마자 바로 마주하는 방센성의 모습은 "이제 왔니?"라고 하듯이 늠름하게 서있었고,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파리근교 방센성(좌)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우)
성곽으로 둘러싸인 방센성의 전개도는 작년에 밀라노에서 방문한 스포르체스코 성을 연상시키는 배치였다.
둘 다 중심도시에서 요새의 역할을 하면서 오랜 역사의 시간을 버텨왔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있다.
방센성의 역사
파리 동쪽 숲 방센숲 안에 위치하여 , 12세기말 루이 7세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방센성은
13 세기 루이 9세 통치시기부터 왕권의 중심지였는데, 백년전쟁의 격정시기에는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면서 성의 탑과 주요한 건물을 증축하면서 샤를 5세 시기부터는 안전한 왕의 거주지로 여겨졌다.
17세기 앙리 4세가 암살당한 후에는 그의 아들 루이 13세가 피난을 왔던 공간이기도 하며, 루이 13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며, 어린 루니 14세가 5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서 국정이 혼란해진 틈을 타발생한 귀족들의 반란인 '프롱드의 난'시기에 루이 14세 역시 파리 주변의 여러 성들과 방센성에서 머물렀다.
파리 주변의 대혼란이 싫었던 루이 14세는 왕권을 안정시키고 베르사유를 건설하면서 방센성을 떠났지만,그 후에도 방센 성은 프랑스 왕들의 중요한 거주지로서 역할을 해왔다.
혁명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루이 16세 시기에는 왕권의 상징인 방센성이 국민들의 거센 비난과 압력으로 폐쇄되었다가,
18세기에는 파리의 무기고 역할을 하는 군사거점 지역이 되면서,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도 지원하였다고 한다.
19세기말부터 역사적인 기념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1920년대부터 방센성의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으나, 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고
1940년대 까지 프랑스의 참모부 본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곽 내부로 진입하는 입구
해자와 연결된 다리를 이용해 성의 안쪽으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할 수 있는데,
보안 검색대를 빠져나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표를 구매한 뒤,
성의 주요 건물들의 내부 차례로 방문할 수 있다
왕실예배당(Saint Chapelle), 왕과 왕비의 거주관(Les pavillions) , 던전이 건설된 작은 성채(Le Chatelet et la Donjon)
위의 세 건물이 방센성의 가장 중요한 핵심 건물들인데, 각 장소의 관람가능 시간이 다르니,
직원들의 안내를 받거나, 관람 가능시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을 보고 동선을 잘 짜야한다.
고딕양식의 보석, 왕실예배당
파리의 중심 시떼섬에 위치한 생샤펠과 함께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시떼섬의 예배당이 2층의 공간에 마련된과 다르게 1층에 예배당을 꾸며놓고 규모도 훨씬 큰 편이다.
13세기에 루이 9세가 십자가전쟁에서 획득한 성물들을 보관된 장소로 지어졌기에,
당시에 루이 9세가 획득한 가시면류관을 보관하고 있는 오늘날 시떼 섬 생샤펠의 기능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왕실 예배당의 구조는 거의 동일하며, 내부장식의 복원이 다르다.
스테인드 글라스장식은 시떼 섬 생샤펠이 단연 압도적이다
현재 방센성의 왕실예배당 내부는 왕의 저녁식사라는 주제로 당시의 만찬을 하던 모습을 복원하여 전시 중이었다.
예배당에 이러한 모형을 갖다 두는 것이 생소했지만, 현재 미사를 드리는 기능으로 사용하지 않기에방센성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기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