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감 치사량 MAX, 푸른빛 판타지 로맨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작화를 매우 선호한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와 같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작품은 초면이었지만, 청량감 넘치는 연출과 비현실적인 비주얼의 캐릭터들, 그리고 일본 특유의 아련한 청춘 감성을 잘 살렸다는 점에 단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여주인공 "히나코"는 치바 현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서핑을 좋아하는 대학생이고,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을 시작으로 소방관"미나토"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서핑과 바다를 매개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달달함이 넘쳐나는 죽고 못 사는 커플이 된다.
하지만 달콤했던 행복도 잠시, 불의의 사고로 "미나토"는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겨진 "히나코"는 절망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미나토"와 자주 듣던 노래를 부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물 속에서"미나토"의 모습이 등장하게 되고, "히나코"에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판타지 같은 비밀이 하나 생겨난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현실은 뒤로 한 채 물 속 "미나토"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히나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낄 즈음, "히나코"는 그동안 몰랐던 "미나토"와의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인연을 알게 되고 조금씩 이별의 슬픔과 "미나토"를 향한 그리움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하게 된다. 과연 "히나코"가 "미나토" 없이도 자신만의 파도를 탈 수 있을까? (결말은 직접 확인해주세요)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는 것은 언제나 견디기 힘든 슬픈 일이지만, 갑작스레 찾아오는 이별의 충격은 배로 크기 마련이다. 하루 아침에 바다에서 '미나토'를 잃게 된 것은 '히나코'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고, '미나토'를 해변으로 끌어들인 게 자신이었기에 죄책감 또한 함께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 '히나코'에게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난 '미나토'는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판타지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엔 그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히나코'에겐 그저'미나토'를 온전히 떠나보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이별은 갑작스런 첫번째 이별 못지않게 극적이다. '미나토'는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히나코'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히나코'는 그 도움 덕분에 비로소 온전히 자신의 파도를 탈 수 있게 된다. 위기 속에서야 현실을 마주하야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고,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 전개인가. 스토리상 말도 안되는 부분이긴 했지만,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정말 극적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히나코"와 같은 상황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공감의 최대치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미나토"의 죽음 이후 "히나코"가 보여준 모습들은 살짝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물 속에 등장하여 자신에게만 비치는 "미나토"를 물병 속에 계속 담고 다니며 현실은 등 돌린 채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는 "히나코"의 모습은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영화 스토리상 어쩔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이러한 장면들을 보다 섬세하게 다뤄줬더라면,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좀 더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확실히 작품이 지닌 설득력과 흡입력은 꽤나 부족했다.
노래를 부르면,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난다는 다소 기괴한 설정 탓에 주인공의 감정선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똑같은 노래를 부르며 아무데서나 죽은 애인을 불러대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밖에. 이 때 부르는 노래가 딱히 두 사람의 관계를 매개해주는 극적인 장치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서...여러모로 아쉬운 설정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누가 뭐래도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청량한 색감과 영상미이다. 스토리 자체의 흠은 어쩔 수 없더라도, 푸른 해변에서 넘실대는 시원한 파도와 아기자기한 마을의 건물들과 음식들, 그리고 한여름의 따사로운 햇빛까지. 인물들의 외형은 중간중간 작붕도 있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영상미 하나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최근, 사실적으로만 보이는 애니메이션들이 팽배해져가는 추세 속에서 유독 그림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완벽한 그림체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몽글몽글하고 아련한 감성이 깊게 느껴질 수 있었다고 본다.
"히나코"는 줄곧 "미나토"와 함께했다. 그렇기에 그가 갑자기 떠났을 때,"히나코"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의 나약함과 비참한 상황에 "히나코" 스스로도 본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히나코"도 본인만 몰랐을 뿐, 누군가의 히어로였다. 어린 시절, 용기 있게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었고, "히나코"가 살려준 그 소년은 "히나코"를 맘 속 히어로로 품고 살아갔다."미나토"의 후배 소방관이였던 "와사비"역시 자신의 부족한 능력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지만, 그 역시도"미나토"의 동생 "요코"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싣어주었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히어로였던 셈.
즉, 대단치는 못하더라도 누구나 다른 사람의 히어로가 될 법한 요인 하나 정도는 품고 있으며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더라도, 나로 인해 힘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소 한 명은 있다. 그러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저앉지 말고, 씩씩하게 용기내어 살아가보자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