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시대극, 갈피 못잡는 스토리
1980년대를 대통령 독재 시기를 배경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시대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과 그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는 권력자들의 대립이 이뤄지는 스토리. 그리고 그 갈등 속에서 사상적 배경을 뒤로 하고, 서로에게서 피어나는 인간애까지. 너무나 익숙한 플롯이고, 우리는 수십 년간 이러한 스토리의 한국영화들을 보고 자라왔다. 하지만, 비슷한 플롯일지라도 분명 각 영화만의 차별화를 둘 수 있고, 작품성과 역사적 고증, 그리고 감동 코드까지 잡아내는 영화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대표적으로 <1987>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이웃사촌>은 비슷한 내용의 여러 영화들이 겹쳐보일 뿐, 이 작품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웃사촌>은 대선출마를 앞두고 가택연금 되어버린 야당 총재'이의식(오달수)'과 그를 감시하기 위한 도청반 팀장으로 파견된 '유대권(정우)'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극 초반, '대권'은 안정부 '김실장(김희원)'의 지시를 받고, 정부에 충성을 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이의식'의 옆집에 머물며 도청을 하는 도중 예상치 못하게 그와 안면을 트고, 진짜 이웃처럼 가까워지는 사건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마음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저 자는 임무 완수를 위해 망가뜨려야 할 적일까? 아니면 나와 일상의 터전을 함께 나눈 이웃사촌일까? '대권'의 고민과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간다.
사실, 줄거리만 봐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대충 예상이 다 가는 스토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품들은 특정 코드 하나를 제대로 잡고 나가야 스토리의 갈피가 제대로 잡히는 편인데, <이웃사촌>은 코미디, 드라마, 감동, 역사 모두 어설프게 다루려고 하다보니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특히나 가장 임팩트를 주어야 할 결말 부분은 관객을 웃기고 싶었던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감독의 의중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이웃사촌"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것은 우왕좌왕하는 스토리 속에서 가장 확실한 캐릭터로 살아 숨쉬었던 "김병철-조현철"뿐이었다. "정우"의 도청팀 멤버로 활약한 두 사람은 어벙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일 정도로 실수연발에 부족한 모습들을 보여주었지만, 극의 유이한 코믹 캐릭터로 활약하며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가장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거의 슬랩스틱과도 같았던 '김병철-조현철'과 '염혜란'의 꼬리잡기 장면. 억지로 감정을 유발하는 본 작품 속에 몇 없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내던 장면이었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김병철'의 코미디 연기에 대한 진가가 발휘된 작품이었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연달아 어벙한 역할에 도전하게 된'조현철'의 덜떨어져 보이는 연기는 이 배우가 가장 잘하는 연기가 아닐까 싶었다.
가상 인물로 등장시킨'이의식 총재' 캐릭터는 대충 어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가져와 만들어 낸 인물인지 예상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다룬 것 하나만으로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실제 역사적 사건도 아닌 완전히 허구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으로 제작 의도가 빤히 보이는 이러한 영화를 만들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실화도 아니다보니 그렇게까지 공감이나 몰입이 되지 않았고, 감정적으로도 와닿지 않았다. 지나치게 단순할 정도로 편파적인 세계관은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켰고, 관객의 입장에서 그닥 자연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당시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이 안 되는 것이라는 지적은 인정하지 못하겠다. 분명,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는 충분히 있는데, 본 작품이 그렇지 않았을 뿐이다.
원래 영화는 영화로 보는 게 맞을 뿐,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워낙 정치색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극중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이의식'은 악의 무리에 맞서는 완전한 선역으로 그려진다. 물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앞장섰다는 관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과연 서민을 위하는 이웃사촌 같은 대통령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현재 정부의 모습이 할많하않 이다보니 부정부패를 없앤 대통령을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지나치게 포장하려는 모습은 거부감이 상당했다. 꼭 악을 없앴다고 해서 그 자가 반드시 선인 것은 아니기에...과도한 이분법적 시각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목욕탕에 찾아온 마지막 장면은...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그 놈의 식사 타령..지긋지긋하다.)
물론, 다른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러한 '이웃사촌'과도 같은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하지만, 내 생각엔 이 영화는 아무리 봐도 전자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