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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19. 2020

[영화 리뷰] 귀를 기울이면 (1995)

순수한 풋사랑 그리고 성장 (지브리 애니메이션/일본영화/넷플릭스)

시티팝-로파이 음악 채널 단골 배경의 주인공, <귀를 기울이면>

시티팝이나 로파이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 자주 듣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썸네일이나 영상으로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배경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귀를 기울이면>이었다. 무려 1995년 작품이며 지브리 스튜디오 첫번째 로맨스 장르의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여타 지브리 작품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신비롭거나 미스테리한 판타지적 요소는 거의 배제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평범한 여중생의 일상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소박하고 담백하게 그려냈고, 아름다운 채색과 데셍이 돋보이는 그림 한 폭 같은 도쿄의 어느 마을이 담긴 영상미를 잔잔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통해 시작된 성장의 발걸음

 지브리의 감성이 그렇듯, <귀를 기울이면> 속 남녀 주인공은 굉장히 순수하고 맑다. 독서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중생 '시즈쿠'는 우연한 계기로 바이올린 제작 장인을 꿈꾸는 '세이지'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알게 되고, 티격태격 하다가 서로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 하지만, 열여섯 어린 나이에 확실한 꿈과 목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세이지'와 달리 그저 책 읽기만 좋아하는 일개 학생에 불과했던 '시즈쿠' '세이지'를 좋아함과 동시에 자극을 받게 되었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소설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즉, 스스로가 성장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 셈.

 <귀를 기울이면>은 분명 로맨스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두 10대 소년소녀의 관계를 서로에 대한 자극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아름다운 관계로 그렸다는 점에서 본 작품이 지닌 순수한 감성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순수하고 맑은 감성이라 살짝 공감이 안 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 이해의 간극은 내가 이들만큼 순수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리셋을 찾게 되는 영화

 이 작품을 감상한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을 두고,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 칭한다. <귀를 기울이면>은 분명 국가도, 배경도, 분위기도, 모두 관객 자신의 삶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풋풋한 사랑을 했고,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꿈을 키웠던 학창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정작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시즈쿠"와 "세이지"처럼 진정으로 맑고 순수한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것이다. 주인공들처럼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미래에 대한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인공들과 같은 관계의 상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인생 리셋의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싶다.

너두 빛날 수 있어, 원석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재능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 재능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은 더더욱 희박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의 천재적인 재능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어느 것 하나쯤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들을 '원석'이라 표현하고, 자신의 진로와 꿈을 좇으며 열심히 달려나가는 이들 중 노력의 결실을 맺은 자들만이 '원석'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성장하게 된다.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는 '시즈쿠' 역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는 있지만,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말한대로 아직까진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하나의 원석에 가깝다. 하지만, '시즈쿠'는 아직 열여섯 중학생에 불과했고, 앞으로 빛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충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에게는 앞서 나가는 '세이지' 같은 인물이 더욱 눈에 들어올 것이고, 자신은 뒤쳐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민은 10~20대 젊은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고민과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귀를 기울이면>은 그러한 수많은 어린 원석들에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일단 현재에 충실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나간다면 빛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물론, 현재 사회가 이 영화가 개봉했던 시기에 비해 훨씬 팍팍해졌기 때문에 속 편한 '빛 좋은 개살구'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단지 영화를 통해서라도 기운을 얻은 게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따뜻한 음악

 <귀를 기울이면>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무런 대사도, 등장인물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일본 도쿄 곳곳의 일상적인 배경들을 보여주며 익숙한 듯한 멜로디의 잔잔하고 따뜻한 컨트리 음악 하나가 흘러나온다. 이 곡은 극 전개 도중에도 몇 번 등장하고, '시즈쿠'가 가사 번역을 하게 되는 곡이기도 한데, 영화 속 배경이 담고 있는 정취를 굉장히 잘 풀어낸 곡이라고 느꼈다. 원곡은 미국의 컨트리 가수 '존 덴버'가 부른 'Take Me Home, Country Roads'라고 하는데, 컨트리 곡임에도 일본 도시와의 분위기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 특유의 감성을 더해준 음악과 더불어 지브리 특유의 동화 같은 그림체가 만나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그냥 들어도 좋은 곡이라, 유튜브에 가사 해석이 들어간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이 있으니 함께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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