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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21. 2020

[영화 리뷰] 청춘 스케치 (1994)

위태롭지만 낭만적인 X세대 감성 (위노나 라이더/에단 호크/로맨스 영화)

90년대 X세대 청춘영화, <청춘 스케치>

 2020년, 우리나라에 <청춘기록>이 있었다면 1994년에는 미국에 <청춘 스케치>가 있었다. "위노나 라이더-벤 스틸러-에단 호크" 쓰리샷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머릿속에 청춘영화 한 편 뚝딱 그려지는 90년대 청춘 로맨스 영화의 정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9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꿈에 대한 낭만과 뼈아픈 현실 사이에서 씁쓸함을 느끼고, 여러 번 부딪히는 20대 초반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제는 "Reality Bites"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청춘 스케치"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보니 굉장히 밝은 로맨틱 코미디스러워졌다. 개인적으로 제목 번역이 미스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춘 로맨스에 관한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단지 발랄한 로코 감성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꺼내들었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달달하지만, 꽤나 진지한 작품이다.

청춘의 낭만, 이상과 현실

 <청춘 스케치> 속 주요 인물들은 지금도 흔히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아직 세상에 대한 낭만과 꿈에 어느 정도 젖어 있고, 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약간의 허세에 젖어 있다. 명백한 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어버린 부모처럼 되고 싶지 않아 그들에게서 벗어나 자립을 원하고, 뻔하고 흔한 일이 아닌 세상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주인공 '레이나(위노나 라이더)' '트로이(에단 호크)'는 각기 다른 성격의 인물이지만, 작품을 감상하며 두 사람이 서로 꽤나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두 사람에게 사회는 녹록지 않은 곳이었다. '레이나'는 대학 수석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방송국에 들어갔지만, 꼰대 같은 진행자 뒤치닥 거리만 하는 인턴 업무에 매진해야 했고, 신문 가판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트로이'는 업무에서 잘려 '레이나'의 집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방송국 진행자와 갈등으로 인해 '레이나'까지 실직 상태가 되며 두 사람은 모두 힘든 시기를 맞는다.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트로이"는 돈이 없고, 삶이 팍팍하더라도 커피나 담배 하나와 같은 작은 가치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반면, '레이나'는 여피족(젊은 부유층)인 방송국 부사장 '마이클'을 만나면서 "트로이"와는 다른 가치관의 모습들을 점차 보여주게 된다. 방송국 실직 이후에도 변변찮은 일자리를 못 찾고, 집에서만 뒹굴거리게 되는 '레이나'의 모습은 '트로이'가 혐오하는 '레이나'의 지적 허세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대립과 두 사람의 오묘한 애정 관계가 엮이면서 갈등이 증폭하게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레이나"와 "트로이"의 입장 모두 공감이 됐다. 20대 젊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고민들이었다.

그 시절에는 있었던 로망

 한국영화건, 외국영화건, 90년대 배경의 영화들을 보면 그 당시만의 로망이라는 것이 항상 담겨 있는 것 같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 열정적인 남녀의 사랑, 그리고 가슴 한 켠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좋은 음악들까지. <청춘 스케치>는 그러한 시대의 로망을 제대로 반영한 작품인만큼, 2020년의 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땐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다. 

 <청춘 스케치>를 보면, 뭔가 20대 초반 젊은 시기에는 낭만에 미쳐 있어도 될 것 같고, 현재의 젊음을 잠깐은 낭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가는 끝장 나기 일쑤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시간도 없다. 대부분 이력서 몇십 장을 넣고, 그 중 붙은 기업 아무데나 들어가는 경우도 훨씬 많다. 물론, 그 당시도 나름대로 청년들의 힘듦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극단으로 팍팍해보이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이 영화 속 젊은 청춘들의 로망은 아름답게 봐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이들과 같은 로망은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설레는 청춘 로맨스

 앞서 언급했듯이 <청춘 스케치>는 로맨스보다는 청춘들의 성장과 역경을 다루는 비중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극중 최고의 리즈시절 비주얼을 자랑하는 '에단 호크'와 '위노나 라이더'의 모습만으로 두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의 로맨스에는 엄청난 설득력이 부여된다. 90년대 청춘배우의 표상과도 같았던 '에단 호크'는 물질만능주의에 연연하지 않고 지식에 통달한 철학자와 젊은 반항아 '트로이'를 연기하며 설렘과 공감의 감정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레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거야. 
담배 한 모금,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달러...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지만, 매번 문학가처럼 얘기하는 그의 화법은 형이상학적이긴 해도 낭만과 설렘이 느껴진다.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 찾아오며 "내 어깨를 후회의 행성이 짓눌러"와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현실의 고난에 놓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로맨틱한 사랑이 있기에 이들의 청춘이 아름답게 그려진 게 아닐까 싶다. 

청춘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격려

난 23살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네가 23살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

 극중 "레이나"와 친구 "비키"의 대화 일부 내용이다. 너무나 공감되는 대사였고, 실제로 최근에도 친구들과 매일 같이 하는 이야기이기에 이 영화에 더욱 과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성인이 되기 전, 혹은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20대 중반이 되면 뭔가 나 자신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며 멋있게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20대 중반이 되어도 현실은 별로 달라지는 게 없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초라함을 느끼며 자존감이 밑바닥을 치는 게 다반사다. 그러는 사이에 정작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 바로 진정한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는 모두 잊고 어느샌가 막막한 현실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된다. 진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여유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힘든 청춘들에게 이 영화는 훌륭한 누군가가 아닌 그냥 너 자신이 되라고 덤덤하게 말해준다. 간단하지만,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속 편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로나 격려도 해주면 안 되나? 위로 받고 아프나 그냥 아프나 어차피 똑같이 아프다. 따라서 영화 속 인물들의 아름다운 청춘과 현실, 그리고 사랑과 성장을 보면서 현실은 잠깐 잊고, 낭만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개소리지만, 그 당시에만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한 아름다움까지는 굳이 부인하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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