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만큼 무서운 상상의 미래 (제니퍼 로렌스/티모시 샬라메/디카프리오)
감독: 애덤 맥케이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 힐 등
장르: 코미디, 드라마, SF
러닝타임: 139분
개봉일: 2021.12.08
천문학자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와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연구 도중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혜성 하나를 발견한다. 데이터를 계산한 결과 정확히 6개월 후 지구와 커다란 혜성이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혼란에 빠진 채 나사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연락을 돌린다. 두 사람은 혜성을 첫 발견한 장본인들로서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대담을 하고, '브리(케이트 블란쳇)'가 진행하는 토크쇼에도 출연해 소식을 전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지 않는다. 다자고짜 황당무계한 소식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며 두 사람을 비웃었고,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케이트와 민디는 고군분투하지만, 두 쪽으로 갈라진 세상은 쉽게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인류의 아포칼립스 상황을 다룬 '애덤 맥케이' 감독의 SF 영화는 역시 뭔가 달랐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신랄한 풍자와 밈으로 가득 채웠고,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허구의 이야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팬데믹 중 하나인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극중 등장하는 인류의 재난이 전혀 남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감독은 재 국제사회에 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함의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작품을 내놓은 셈.
'랜들 민디'와 '케이트 디비아스키'가 처한 상황은 마치 이들을 주인공으로 <트루먼 쇼>를 찍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들을 심리적으로 따돌린다. 이들은 객관적인 과학 데이터를 갖고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대중은 이들을 그저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힌 미치광이 과학자로 괄시한다. 연예인의 열애설과 같은 가십거리에는 SNS가 폭주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가지면서 두 과학자에게는 '케이트'를 재물 삼아 인터넷 밈으로 희화화시켜 버리기까지 한다. 두 사람과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만을 제외하면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이성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현실을 외면하는데, 아무리 영화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현실감각이 밑바닥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SNL 블랙코미디식 콩트로 받아들이며 웃어넘길 수 있는 장면들이 많지만, 다시 한 번 해당 장면을 곱씹으며 우리 현실에 덧입혀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보다 더한 정치 코미디라는 사실을 덜컥 깨달을 수 있다. 그 때부터 관객은 마냥 웃을 수 없게 된다.
<돈 룩 업>이 주목받은 까닭은 <바이스>, <빅 쇼트> 등으로 명성을 쌓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가장 결정적이다. 투톱 주연으로 나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는 물론 대배우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블란쳇', 가장 핫한 젊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 인기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그리고 '조나 힐'과 '마크 라이언스'까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을 조연으로 채웠다. 제일 돋보인 건 극중 신경 안정제가 필수일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하는 '랜들'과 침착하다가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디비아스키'의 대비를 훌륭하게 선보인 '제니퍼 로렌스'와 '디카프리오'의 깔끔한 호흡이다. 특히 열과 성을 다해 혜성과의 충돌을 막으려 진심으로 애쓰는 '제니퍼 로렌스'의 열연은 '역시'라는 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반면, 조연으로 나선 스타들은 작은 비중 대신 큰 폭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며 극중 캐릭터 싸움에 열을 올리는데, 가장 독보적인 임팩트를 남긴 배우는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대통령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이다. 멍청함과 영악함, 유머와 계산적인 감각을 모두 갖춘 새로운 타입의 대통령을 연기하며 관객의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타입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카리스마와 우아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케이트 블란쳇'은 섹시한 앵커 '브리'로 또 한번의 연기 변신에 성공했고, 최근 알차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는 '게임 덕후+힙찔이' 속성이 더해진 캐릭터를 배우 특유의 매력으로 맛깔나게 완성했다. 정말 많은 배우들이 등장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배우의 연기 변신이 유독 눈에 띄었다.
<돈 룩 업>은 결국, 탐욕과 이기심에 찌든 국가 지도자와 이성을 잃어버린 정치병 말기의 대중이 합심하면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경고를 날린다. '설마 대통령 하나 때문에 지구가 무너지겠어?'라는 낙관을 펼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쳐왔을 때도, 많은 국가들의 정부는 발빠르게 국민들을 위해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다른 국가의 눈치를 보고, 국가의 이익에 합치되는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았는가.
영화는 결국 최악의 결말을 그대로 가져감으로써 우리가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조차 남기지 않았다. 대선 투표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둔 우리는 더욱이 심란해질 수 밖에 없다. 작품의 신랄한 풍자와 적절한 유머에 한껏 웃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뒤통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평할 정도로 후보자들의 네거티브가 극에 달했고, 정치 자체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국가가 최악의 사태로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는 결과가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네 정쟁은 'Don't Look Up'과 'Just Look Up'을 외치며 한 끗 차이로 싸우는 극중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겨우 한 단어만 다를 뿐이지만, 이 챌린지의 승부가 불러온 결말은 참혹했다. 누굴 선택하든 부정적인 미래만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선택의 과정을 회피할 수는 없다. 물론, <돈 룩 업>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단지 최악의 결말만을 보여준 채 우리의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