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들의 출구 없는 귀여움에 빠지다 (김고은/안보현/박진영/박지현)
연출: 이상엽, 주상규
극본: 송재정
출연: 김고은, 안보현, 박진영, 이유비, 박지현
장르: 로맨스, 애니메이션
방영횟수: 14부작
스트리밍: 티빙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이 넘도록 나의 수요일과 토요일의 시작을 책임져주었던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대개 웹툰 팬들은 본인이 즐겨보던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고 하면 원작과 맞지 않는 배우의 싱크로율, 스토리의 변형 등의 이유로 반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미의 세포들>은 늘 공개일 기준 최상위 랭킹을 달리던 인기 웹툰인만큼 당시 웹툰을 즐겨보던 독자들의 만족도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출발했었다.
세포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두 가지 콘텐츠를 한 번에 담아야 한다는 난제가 있었지만 작년에 시즌1으로 첫삽을 뜬 <유미의 세포들> 드라마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원작의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맞지 않다던 '김고은'은 매 회차마다 발전하는 감정연기를 통해 '유미'라는 유명한 웹툰 캐릭터를 자기만의 식으로 해석했고, 다른 주조연 캐릭터들도 원작과 큰 이질감을 유발하지 않았다. 특히 '구웅' 역의 '안보현'과 '루비' 역의 '이유비'는 웹툰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비주얼과 연기력으로 원작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 <유미의 세포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요인은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는 세포들과 그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들의 대활약이다. 사실 원작은 '유미'의 이야기와 세포들의 이야기가 비등비등한 비중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드라마화 되었을 때 이를 어떻게 영상화할지 궁금했다. 세포들의 실사화가 불가능한만큼 과감하게 '애니메이션+더빙'이라는 선택지를 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응큼세포'를 연기한 '안영미'를 제외하고는 전부 베테랑 성우들을 기용해 각 캐릭터에 들어맞는 목소리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원작보다 훨씬 귀엽고 앙증맞게 구현된 3D그림체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한몫 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세포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파트가 훨씬 더 재밌을 정도로 애니메이션 연출이 뛰어났다. 원작은 '이동건' 작가만의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표현한 비유적 장치들이 세포들의 세계를 배경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는 웹툰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원작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드라마 속 애니메이션 장면들은 어느 곳 하나 어색한 장면들이 없었고,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심리상태를 생생하게 전달해 줌으로써 시청자들을 이입시켰다. 말 그대로 꼭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는 원작 그대로의 이야기를 끌고 와 원작의 팬도,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유미의 세포들>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도 작품의 매력을 빠짐없이 보여줄 수 있었다.
(+)
가능하기만 하다면 애니메이션으로만 제작된 <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포 캐릭터들이 미치도록 귀엽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흔한 30대 여성의 연애와 직장생활을 현실적으로 그린 스토리로 다수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유미의 세포들>은 여주인공인 '유미'와 남주인공인 '바비', '구웅'과의 로맨스가 아닌 '김유미'라는 인물 자체의 삶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로맨스의 비중이 큰 작품이기는 하지만 회사 동료와의 갈등, 꿈과 목표에 대한 고민, 그리고 30대 직장인의 소소한 일상까지 빠짐없이 담아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거나 혹은 현재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인 사람들에게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앞서 언급했듯 <유미의 세포들> 드라마는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는 세포들이 상당한 귀여움과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유발한다. 하지만, 세포들의 기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 오해와 갈등이 축적되어 이별로 향하는 남녀 주인공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등장인물의 속마음이 장면 속에 전부 담겨져 있지 않고, 기껏 해야 내레이션 몇 마디로 정리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대화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삽질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유미의 세포들>은 결정적인 차별점을 갖는다. '구웅'과 '유미'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 곧바로 세포들이 등장해 인물들의 속마음을 100% 솔직하게 표현하여 시청자들만큼은 두 캐릭터의 진심을 알 수 있게끔 한다. 따라서 여느 로맨스 드라마처럼 특정 주인공 한 명을 욕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유미와 웅이가 이별을 직면하는 회차에서 '웅이도 이해가 되고, 유미도 이해가 된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두 사람의 이별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 이들과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세포들을 통해 인물들의 속마음을 낱낱이 보여준 판타지 같은 장면들이 오히려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연애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게 된 셈이다.
특히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구간은 '유미'와 '구웅'이 멀어지기 시작한 것을 비유한 '박 터뜨리기'. 이별 신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헤어지는 커플은 거의 없다. 서로 만나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상처가 되는 일이 생겨도 참고, 생각보다 관계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잘한 사건들은 콩주머니로 박을 터뜨리듯 조금씩 애정선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타격들이 쌓이고 쌓여 결과적으로는 매우 사소한 이유 하나가 결정타를 날려 박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대개 상대방은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헤어지자는 것이냐' 혹은 '왜 헤어지자는 건데'라며 반문하거나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마치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다는 듯이 억울해하며. 하지만 이별카드가 그렇게 쉽게 꺼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 않는가. 아마 연애를 하며 이러한 감정을 겪었을 사람들에게 과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동건' 작가의 비유는 원래부터 남달랐지만, 이 장면만큼은 다시 봐도 놀랍다. 웹툰 속 명장면들이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세포들과 인물들 간의 상관성이 꽤나 선명하게 드러나 부족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직 <유미의 세포들 시즌2>는 보지 못했는데, 시즌1 최종회에서 웅이와의 연애가 종료되었으니 이제는 '유바비'와의 연애, 그리고 대한국수를 퇴사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유미의 성장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아직 캐스팅 소식이 없어서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웹툰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신순록'의 등장 여부에도 관심이 쏠릴 것이다. 원작 내용을 전부 알고 있어 '유바비'와의 스토리를 보기 전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도 세포들로 표현되는 인물들의 솔직한 마음들이 생생하게 와닿고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귀여워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