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opoCI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ofilm Aug 22. 2022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사랑을 통해 찾아가는 '나' (로맨틱 코미디/노르웨이 영화/칸영화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감독: 요아킴 트리에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안데스 다니엘슨 리 등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국가: 노르웨이

상영시간: 121분

개봉일: 2022.08.25

사랑을 통해 찾아가는 진정한 내 모습

 서른을 앞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의대생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사진작가에서 작가 지망생으로 직업을 수시로 바꾸고, 진로의 변화에 따라 만나는 애인도 함께 바뀐다. 유명한 만화가 '악셀(안데스 다니엘슨 리)'과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듯하지만 커리어를 쌓아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 그와 달리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자신의 상황에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다. 이후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를 만나 편안하고 유쾌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여전히 모호하기만 한 정체성과 장래가 다시 한 번 '율리에'를 괴롭힌다. 그는 진정한 사랑과 자신이 꿈꾸는 것 모두를 찾을 수 있을까?

과감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감각적인 로맨스 작품의 탄생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마치 단편 모음집처럼 여러 개의 플롯으로 쪼갠 구성, 과감한 쇼트와 독특한 연출 방식을 통해 혼란이 깃든 '율리에'의 심리로 몰입을 이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처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각각의 부제가 있는 1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음에도 줄거리가 뚝뚝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챕터별 구성 때문에 내용을 질질 끄는 구간이 없고, 호흡이 빠르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고 라디오에서 각기 다른 연애 사연을 듣는 것처럼 모든 챕터가 흥미롭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모든 것이 멈춘 세상에서 '율리에' 혼자만이 '에이빈드'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이라던가 약에 취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신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것 등 로맨스 장르의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도 매우 신선하다. 대중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도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해 길가에서 달리는 장면마저도 로맨틱하게 그려지며 섹슈얼한 장면마저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표현한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 표현을 요하는 '율리에'로 분한 '레나테 ㄷ레인스베'와 '악셀'이라는 사람이 실존하는 것처럼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안데스 다니엘슨 리' 두 배우의 열연이 이끄는 힘도 강렬하다. 심도 있는 이야기와 감각적인 장면들, 뛰어난 배우들이 만나 '나' '사랑'을 주제로 한 감각적인 작품을 완성도 있게 그렸다. 

사랑은 거들 뿐, 골치 아픈 자기탐색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보통의 범주에 속한 로코 무비는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란 본디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 '율리에'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단순히 로맨스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면 율리에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악셀'은 율리에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 남자였으며 '에이빈드'는 다정하고 헌신적인 애인이었다. 율리에는 부족함 없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은 완전하게 채워지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어진 남녀의 관계 속에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위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리에'는 서른을 앞둔 사회초년생이지만 40대 중반의 남자친구 '악셀'은 인지도와 커리어를 모두 갖춘 인기 만화가다. 율리에는 그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진로를 바꾸기만 하고, 아르바이트생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그와 비교하며 마치 자신이 인생의 조연인 것처럼 느꼈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회적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은 '에이빈드'를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율리에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남자였지만 서로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사랑만으로 그녀의 갈망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작품은 '율리에'가 뜨거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쓰러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핵심이다. 사랑은 단지 '나'를 찾는데 쓰이는 수단일 뿐이며 '율리에'는 두 남자와 사랑의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을 만나 행복해 하고 아파하는 시간을 겪으며 자아를 조금씩 찾아나간다.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율리에'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그의 모순적인 태도를 답답해하기 보다는 그녀와 헤어진 것과는 별개로 끝까지 성장을 응원하던 '악셀'처럼 율리에가 자아의 혼란과 내적 갈등을 이겨내기를 바라게 된다. 

최악일지도 모르는 나, 누구에게나 있을 방황의 시기

 극중 '악셀'은 '율리에'에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는 말을 한다. 그녀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이는 애인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원제에 대한 번역이 작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데, 직역하면 '세상 최악의 인간'에 좀 더 가깝다. 번역된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여러 남자와 사랑을 하며 최악의 인간들을 경험하는 스토리가 예상되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최악의 인간은 결국 '율리에'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뭔가를 원하긴 하는데 스스로도 알지 못해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고 싶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 이러한 방황의 시기에 두 남자를 만나며 이별을 반복함으로써 사랑할 때 최악의 인간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은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율리에'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며 관객에게도 이를 유도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저 이상을 향한 욕망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극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고, 진로 결정에 대한 큰 고민을 하는 사회초년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연 상대방에게 최악의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악셀'과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거나 '에이빈드'의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바람직했을까? 인생에서 사랑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최악의 인간이 되는 것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면, 설령 누군가 비난을 할지라도 본인을 위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같은 형태는 아닐 지라도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방황이기에 우리는 '율리에'를 욕하지 않고 기꺼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헌트 (20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