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ofilm Jan 18. 2021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2020)

가족이라는 뿌리의 양면성 (넷플릭스 영화/에이미 아담스/가족영화)

Hillbilly Elegy (힐빌리의 노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를 거뒀을 때, 그의 핵심 지지층에는 백인 노동자 계층이 자리잡고 있었다. 트럼프의 막강한 정치세력이 되어주었던 이들은 무슨 이유로 그의 편에 서게 되었을까. 영화의 원작이 되어준 회고록 'Hillbilly Elegy'는 사회의 주류 계층이 되지 못했던 이들의 시각에서 입장을 전달하며 미국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성찰을 꼬집는다.

 '힐빌리'란 미국 중부 애팔래치아 산맥에 사는 가난한 백인층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로, 원작의 저자이자 극의 주인공인 "J.D 밴스"와 그의 가족들 같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주로 이에 속한다. 이 계층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들이 살아온 환경과 삶, 사회로부터 느꼈던 불안과 역경을 조명한다.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환경이 얼마나 개인의 인생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메우는 지를,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풀어 나간다.

켄터키 출신 한 가족의 이야기

 극은 90년대 후반과 2010년대 현재를 교차편집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애팰래치아 지역 출신의 가족들과 오하이오에서 함께 살고 있는 'J.D 밴스(가브리엘 바쏘)'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14년이 지난 후,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는 엘리트로 성장했고, 학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펌 취직을 해야만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닥뜨린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면접 준비 기간, 갑작스레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 '비브(에이미 아담스)'가 또다시 약물에 손을 댔다는 전화. 

끊어낼 수 없는 가족, 뿌리인가 족쇄인가

 시간은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14년 전 '비브'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지만, 간호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엄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J.D의 외할머니 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힘든 성장기를 거쳐온 아픔이 있는 인물이었다. J.D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브는 점차 이성의 끈을 놓게 되고,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전부터 분노를 잘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여왔는데, 약물 남용을 하고 직장에서 짤리면서 점차 J.D의 가정은 파탄나기 시작한다. 무책임하고 통제불가능한 비브의 곁에서 같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던 J.D는 강인하고 든든한 할머니로 인해 극적으로 구원받는다.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해준 할머니 덕분에 온전한 삶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게 된 J.D. 그런 그에게 14년만에 그를 누구보다 힘들게 했던 엄마가 다시 손길을 내민다. 그 손을 다시 잡아야 할까..?

정치사회적 의미보단 가족에 집중

 정치적 이슈와 사회적 고발, 미국 사회에 대한 성찰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가족 서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작의 저자인 J.D의 성장 배경을 통해 애팔래치아 지역의 빈곤층 가정의 삶,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가족 연대의 끈끈함을 함께 담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 담겨진 사회적 뉘앙스가 희미하게 반영되어 있어 영화만으로는 백인 노동자 계층이 어째서 트럼프와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는지, 어떤 사회적 부조리함을 겪어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물론, 사회에 만연한 10대 출산, 가정 폭력, 한부모 가정, 오피오이드 에피데믹과 같은 사회문화적 고충들을 드러내고는 있다. 다만,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단순히 미국 중부 시골의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가족 드라마 이상의 작품으로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선택과 노력의 중요성 그리고 가족 연대

 '힐빌리의 노래'는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백인 노동자 계층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한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 하지만, 그저 환경 탓만을 하며 모든 원인을 사회에 내돌리지는 않는다. J.D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빈곤, 몰락한 공업 지대에서의 삶, 약물중독, 한부모가정이라는 외부 환경이 모두 들이닥쳤지만, 그러한 환경을 제공했던 할머니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을 얻었다. 어린 시절 그를 힘들게 했던 존재는 가족이었지만, 그에게 힘을 준 사람도 역시 가족이었다. 그가 예일대 로스쿨 장학생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준 그의 노력 또한 가족의 유산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영화는 환경보다는 개인의 힘과 노력이 가진 힘을 강조하면서도 가족의 중요성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글렌 클로즈-에이미 아담스, 최고의 연기 앙상블

 앞서 언급했다시피 극은 원작 소설을 쓴 "J.D.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실존 인물과 극강의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작품을 위해 9kg를 증량하고 특수분장까지 한 '에이미 아담스'와 몰라볼 정도로 변신을 한 '글렌 클로즈'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 끝무렵에 나오는 홈비디오의 실존 인물들을 그대로 데려다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극의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배우들은 비주얼뿐 아니라 연기력에서도 가히 압권이다. 글렌 클로즈와 에이미 아담스는 마치 오스카 트로피를 놓고 싸우듯 걸출한 연기력을 뽐내며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마약에 찌들고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이는 '베브'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캐릭터 변신은 매우 큰 임팩트를 선사했지만, 대사와 눈빛만으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말이 필요 없었다. 아마 이들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존재는 오스카 뿐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

 사실 집단주의 성격이 강한 동양 문화권에서만 '가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강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극에 등장한 애팔래치아 지역은 서구 문화권이긴 하지만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온 시골 지역이다보니 동양 사회 못지않게 가족에 부여하는 중요성이 매우 큰 듯 하다.

 J.D.가 내적 갈등을 겪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무게와 양면성에 담겨져 있다. 분명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자신에게 폭력과 욕설을 일삼고, 약에 취해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힘들게 살아온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고, 분명 자신에게 좋은 엄마였던 시간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 면접에 가야 하는 중요한 상황임에도 엄마가 내미는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이다. 가족의 양면성이 유독 부각되어 나타났던 J.D.의 환경은 그로 하여금 정체성의 혼란을 계속해서 겪게 만들었다.

손을 놓을 줄도 아는 법

 J.D.는 끝내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 누나에게 맡겨둔 채 떠났지만, 가족을 위해서 그는 반드시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3대째 그를 괴롭히는 가족의 고통에 대한 족쇄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 손을 꼭 놓아야만 했다. 엄마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고, 누나와 자신 모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의 취업과 성공이 꼭 필요 했기 때문이다. J.D.가 만약 엄마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겨 그대로 호텔에 남았더라면, 순간의 서글픔은 지울 수 있더라도 이들 가족의 파탄 맞은 생활은 달라질 게 없었을 것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시련이 있어도, 정말로 죽지 않는 이상 삶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우리는 개인의 성공과 가족을 놓고 중요성을 논할 때, 개인의 행복을 택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기적이다, 냉정하다, 무책임하다는 말을 쏟아내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무기로 누군가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족은 서로에게 건넨 손을 잡아줄 수도 있어야 하지만, 그 손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의 행복을 우선으로 찾아나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J.D.가 엄마의 곁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희생해야 하는 현실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맘껏 앞으로 나아가도 된다고, 그리고 그래야만 나의 환경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 마티아스와 막심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