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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Feb 07. 2021

[영화 리뷰] 페어웰 (2020)

어느 가족의 이별공식 (골든글로브/아콰피나/가족 영화)

아콰피나가 이끄는 <페어웰>

 골든글로브 최초로 아시아계 여우주연상 수상을 일궈낸 작품이다. 국내 정식 개봉이 이뤄지기까지 일 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기에 너무도 긴 기다림이 소요되었다. 기다림이 길었던만큼 작품에 대한 기대도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룰루 왕' 감독이 연출한 <페어웰>은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지만, 극에 등장하는 언어의 대부분이 중국어라는 점에서 미국영화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는 않는다.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주인공 '아콰피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생소한 동양계 배우들이다. 여러모로 낯선 부분이 많은 영화이지만, <크레이치 리치 아시안><오션스 에이트><쥬만지 넥스트 레벨>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아콰피나'의 등장만으로 믿고 관람할 수 있었다.

어느 가족의 독특한 이별공식

 <페어웰>은 미국 뉴욕에 20년째 거주 중인 중국 이민자 부부와 그들의 딸 '빌리(아콰피나)'가 할머니의 폐암 4기 진단 소식을 전해듣는 것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20년째 떨어져 살고 있고, 국적도 달리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각별한 사이로 지냈기에 할머니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은 '빌리'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할머니와 다 같이 모일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빌리' 사촌의 결혼식을 급히 계획하고, 뉴욕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던 '빌리' 역시 모든 걸 뒤로 한 채 중국 고향으로 향한다. 가족들은 중국의 전통대로 할머니에겐 폐암 소식을 비밀로 하는데, 이 사실도 모른 채 손자의 결혼식을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할머니 때문에 마음이 쓰이는 '빌리'. 과연 할머니에게 비밀을 숨긴 채 무사히 결혼식 참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중국 가족 문화에 대한 이해 필요

 <페어웰>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가족 문화와 동양의 전통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가족이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남은 생애를 불안에 떨면서 보내지 않게 하도록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숨긴다고 한다. '빌리'의 가족들 역시 이러한 관습으로 인해 할머니의 폐암 진단 소식을 끝까지 전하지 않는다. 극중 동양의 관습으로 포장되지만, 사실 같은 동양 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빌리' 가족의 이별 방식이 마냥 익숙해 보이진 않는다.

 중국인 가정에서 중국의 관습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될 게 없지만, '빌리'와 그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20년간 거주한 이민자 가정이다. 동양 문화권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서구 문화권에서 받은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가족들의 사고방식과 '빌리'의 생각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시한부 소식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서구 문화권에서 불법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관습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가족들은 중국 문화권의 영향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 역시 '빌리'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같은 가족의 뿌리 내에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이민자 가족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갈등이 극을 관통하는 중심소재로 작용한다.

담백한 연출, 절제를 담은 감정선

 소재 자체는 신선하지 않지만, <페어웰>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요인은 연출 방식에 있다. 죽음과 시한부라는 신파적인 소재를 사용했지만, 비슷한 소재를 다룬 여느 작품들처럼 감정의 과잉을 그려내지 않는다. 건조하면서도 담백한 연출을 사용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의 감정선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 할머니에게 비밀을 숨기기 위해 슬픔을 감추는 가족들의 모습이 연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뻔한 신파극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준다. 특히 음악을 굉장히 감각적으로 활용했는데, 클래식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많이 활용하면서 별 내용이 아님에도 긴장감을 적재적소에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준다. 슬픈 소재를 다룬 가족영화에 쉽게 등장하지 않을 법한 음악들과, 각종 슬로우 모션 촬영 기법, 몇몇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은 극에 트렌디하고 힙한 무드를 형성한다.

동양에선 익숙한 스토리, 부족한 재미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의 죽음에 대한 시각이 상대적으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서양 국가들에서는 <페어웰>이라는 작품 자체의 플롯이 신선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이 동양 문화권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스토리가 굉장히 익숙하게 다가왔고, 큰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스토리 자체도 극적인 부분이 없고, 재미가 떨어지는데 등장하는 배우들도 '아콰피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보는 중국계 배우들 뿐이니 마치 어느 중국인 가정의 '인간극장'과도 같은 다큐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보니 심장이 열렬한 반응을 보내기엔 영화의 힘이 너무 미약하다. 해외에서 극찬을 받고, 시상식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오로지 서양 문화권에서 신선하게 느껴졌을 동양 문화권 가정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이 작품을 다른 작품보다 우선적으로 봐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할머니-손녀의 부족한 케미

 할머니에게 시한부 판정 사실을 숨기는 데에 큰 죄책감을 느끼는 '빌리'는 할머니와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았음에도 사이가 굉장히 각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빌리가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는 장면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여 두 사람의 진정한 케미를 느끼기는 다소 어렵다. 같이 이른 아침에 'HA! HA!' 기합을 내며 스트레칭을 하는 장면이나 헤어질 때의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두 사람의 진한 애정이 담긴 에피소드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비극 속에서 펼쳐지는 소통의 부재는 주인공과 할머니의 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할머니 곁에 남아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바람이 있음에도 무력하게 미국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일종의 허탈함을 남긴다. 신파극으로 쏠리지 않는 담백한 연출로서는 좋은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손녀와 할머니 간의 애틋함을 부각시키기엔 두 인물의 소통이 너무나 부족하다. 적어도 '빌리'가 왜 그렇게까지 할머니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왜 그와의 제대로 된 작별을 위해 먼 고향까지 급히 날아왔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시퀀스가 하나 정도는 필요했다.


중국 문화와 타문화의 충돌

 <페어웰>에 등장하는 중국의 문화는 동양 문화권의 관습으로 포장되었으나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이다. 죽기 직전까지 시한부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릴 수 없고, 하물며 의사마저도 그 과습에 동참하는 문화는 유교적 집단주의 문화권의 구조적 폭력으로 느껴질 정도다. 시한부 소식을 알게 된다면, 남은 시간을 불안과 우울감에 빠져 살게 될까봐 죽기 직전까지 그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는 남겨지게 될 사람들 스스로를 위한 핑곗거리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 사실을 하루 빨리 알려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빌리였다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의 문화가 그렇다 하니 고향을 떠난 이민자 입장에서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입장이긴 하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내포하는 <페어웰>은 세계 속 다양한 문화적 관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이 더 좋냐, 중국이 더 좋냐는 주제를 두고 가족끼리 밥상머리에서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는 장면 역시 중국의 자문화 중심주의와 중화사상과 미국을 시기·질투하는 이중적인 마인드의 충돌이 나타난다. 분명 같은 핏줄을 공유하는 가족이지만, 그 뿌리 내에 다양한 문화권의 인물들이 존재하고, 국가와 문화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으로 느껴진다. 답답한 중국의 유교적 마인드가 대체로 깔려져 있지만, 같은 중국인 가족임에도 그에 대한 반기와 의문점을 제기하는 '빌리'가 있어 다양한 관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킬링 포인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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