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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Mar 25. 2021

[영화리뷰]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1994)

90년대 홍콩, 치명적인 감성에 젖다 (양조위/임청하/금성무/왕가위)

<중경삼림> 영화 정보

개봉: 1994.07.14 (재개봉 2021.03.04)

출연: 임청하, 양조위, 왕페이, 가네시로 다케시

감독: 왕가위

러닝타임: 101분

90년대 홍콩, 치명적 감성에 젖다

 최근 '왓챠 익스클루시브'를 통해서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모두 공개되어 뒷북으로나마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탐미하고 있다. <춘광사설>을 시작으로, 두 번째로 보게 된 <중경삼림>은 감독 본인도 굉장히 힘을 빼고 연출한 작품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내용이 심플하고, 의미적으로도 복잡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오랫동안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스토리나 인물 간의 관계 등 구조적인 설정은 뒤로 한 채 미장센과 음악, 영상미에 모든 것을 올인한 아트버스터라고 느꼈다. 자칫 자의식 과잉과 허세로 번질 수 있는 요소들이지만, <중경삼림>에서만큼은 스타일리시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분명 취향이 갈릴 수는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첫번째 에피소드, 임청하와 금성무

경찰 넘버 223의 '하지무(가네시로 다케시)'는 만우절날 연인 '메이'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고,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애인이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같이 구매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유통기한이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인 것으로만 계속해서 구매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날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헤어진 연인을 잊을 것이라 결심힌다.

'마약 밀매업자(임청하)' 여인은 화려한 금발 가발과 레인코트, 선글라스를 착용한 눈에 띄는 인물로 '충킹맨션'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마약 밀반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인도인들이 마약을 들고 튀면서 뒤통수를 맞게 되고 그들을 추격한 끝에 살벌한 총격전까지 벌이게 된다. 끔찍한 하루를 보낸 후,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바를 찾는데 그곳에서 경찰 '하지무'를 만나게 된다. 생일날까지 연인의 연락이 닿지 않자 그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바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여성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 때 바에 들어선 여성이 바로 마약 밀매업자 여인. 두 사람은 함께 위스키를 마시며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호텔로 향한다.

두번째 에피소드, 양조위와 왕페이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지무가 단골로 찾던 음식점은 '경찰 넘버 663(양조위)'도 매일 같이 샐러드를 먹기 위해 찾는 곳이다. 그는 스튜어디스였던 연인에게 실연을 당했는데, 음식점의 일을 돕고 있던 '페이(왕페이)'는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663의 옛 애인은 음식점을 찾아와 그에게 쓴 편지와 집 열쇠를 전하는데, 페이는 열쇠와 편지를 가로채 663의 집을 몰래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663의 집을 마음대로 꾸미고, 정리하면서 집안에 있던 그의 옛 애인에 대한 흔적들을 지우게 되고 663은 실연으로부터 조금씩 극복하기 시작한다. 페이의 행동은 곧 663에게 들키지만, 그는 이미 독특한 매력의 페이에게 빠져든 후였다. 663은 페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페이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린다. 

왜 최고의 사랑영화인가?

 <중경삼림>은 해석을 두고 의미가 분분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필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던 이 영화가 로맨틱한 사랑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 "사랑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는 요즘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면 손발이 오그라들만한 대사다. 하지만, 허무할 정도로 통조림에 집착하며 끝난 사랑에 허우적 거리는 그의 행동과 우수에 찬 눈빛을 바라보면 순수할 정도로 지독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 오그라드는 워딩을 사용했음에도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대사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무의 에피소드가 만 년동안 한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면, 페이는 치유를 통한 사랑을 그린다. 현대판 불법 우렁각시로 보여지는 페이의 우스꽝스러운 사랑 방식은 실연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슬픔을 가진 인물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물에게 말을 걸 정도로 이별의 상처가 컸던 663이 아픔을 극복하고 페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알게 모르게 그에게 영향을 준 페이의 기묘한 행동들 덕분이다. 바로 이어질 것으로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1년이라는 시간을 빙빙 돌아갔지만, 663에게 보딩패스를 새로 적어주는 페이의 행동은 두 사람이 결국은 연결되었음을 암시한다.

유통기한 없는 왕가위 감성

 하지무가 원했던 유통기한 없는 통조림 같은 사랑은 극중 이뤄지지 않았지만,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슷한 맥락의 선물을 준다. <중경삼림>은 90년대 홍콩과 청춘의 무드를 만 년의 유통기한을 지닌 통조림에 담아 과거의 경제 호황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201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계속해서 전해주고 있다. 94년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 담긴 감성은 27년이라는 시간 지금까지도 전혀 상하지 않은 채 젊은 우리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이 영화 속에 살아 숨쉬는 퇴폐적 젊음과 무더운 여름날의 쿨한 무드, 대책 없는 허세와 낭만은 여전히 이 통조림 속에서 빛나고 있다. '왕가위 감독'이 작품을 제작할 때에 통조림이라는 장치를 두고 훗날 이러한 해석이 더해질 것을 알고 사용했는지, 그 숨겨진 의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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