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면, 힐링영화 (스포일러 있음)
주제를 막론하고 공포·스릴러 영화를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미드 소마"는 화려한 영화의 비주얼과 영상미에 혹해 공포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볼 뻔했지만 악명 높은 "유전"을 잇는'아리 에스터'감독의 또다른 호러/스릴러 영화라기에 감상을 망설였다. 하지만, 평론가들과 영화 좀 본다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고, 개봉한 지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해당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실제로, 걱정했던 것 만큼 심하게 무섭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들이 덕지덕지 가득한 정도도 아니였다. 하지만, 147분 내내 온몸을 감돌았던 괴기스러운 분위기와 기분 나쁜 사운드는 말초 신경 하나하나를 자극한다는 느낌이었다.
러닝타임 자체가 길기도 하지만, "미드 소마"는 전개 방식이 불편할 정도로 굉장히 느리고 지지부진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롱테이크로 찍을 필요가 있었나 싶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불필요하다고 느껴진 씬들도 제법 있었다. 그렇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가진 불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깊게 몰입해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면,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긴 러닝타임과 함께 영화가 지닌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굉장히 스산하고 불편하다.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배경음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불편한 음성들이 자꾸만 신경을 자극시킨다. 영화에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한데, 사운드적으로 그러한 부정적인 정서를 극대화 시켜주었다보니 장면과 관계없이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영화가 담아낸 메타포나 의미들을 단숨에 이해해내긴 쉽지 않지만, 줄거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는 하루 아침에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남자친구인'크리스티안'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고, 그러한 상태에서 두 사람은 친구들(마크, 조쉬, 펠레)과 함께 논문 작업을 목적으로 스웨덴으로 여행을 가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된다. 스웨덴에 도착한 그들은,'호르가 마을'에서 펼쳐지는'미드 소마' 축제에 참여하게 되는데, 축제가 진행되면서 '호르가' 부족만의 이해할 수 없는 풍습 하나하나를 알게 되고, 축제의 의식이 담고 있는 진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마을의 음산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점층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미드 소마'는 불편함과 섬뜩한 감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고 있지만, 이러한 분위기와는 이질적으로 영상미는 굉장히 아름답다. '호르가 마을'이 위치한 푸른 들판과 마을 사람들이 입은 하얀 전통의상,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꽃들까지 색감도 예쁘고, 굉장히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을 뒤로 하고 사람을 죽이고,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얼굴을 으스러질 정도로 뭉개버리는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아름다운 영상미는 오히려 이질감을 느끼게 하여 이 영화가 지닌 기분 나쁜 정서를 배로 증폭시킨다.
그럼에도, 미스테리한 북유럽의 한 전통 부족의 의식과 독특한 풍습들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효과적인 영향을 주었다. 긴 시간동안 이러한 영상미에 매료되어'호르가 마을'의 풍습에 매료되는 듯한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극중 등장하는 스웨덴의 호르가 부족은 전통 풍습과 자신들이 이어온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지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지독한 세뇌 교육으로 이어온 사이비 종교의 호러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강제적 윤회의 의미로 72세가 된 노인은 생을 다 했다며 절벽에서 떨어뜨린 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얼굴을 망치로 뭉개버린다거나 9인의 제물을 정하기 위해 외부인 넷을 각기 잔인한 방식으로 죽여버리는 것 역시 끔찍함 그 자체였다. 영화 결말부에서 제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원한 부족민들에게 불에 타기 전,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을 건네주지만, 이들은 굉장히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다. 결국 이들 부족의 전통과 풍습은 모두 사이비 종교의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었다. 종교에 과도하게 미치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결말을 본 것만 같았다.
극중 등장하는 스웨덴의 호르가 부족은 전통 풍습과 자신들이 이어온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지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지독한 세뇌 교육으로 이어온 사이비 종교의 호러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강제적 윤회의 의미로 72세가 된 노인은 생을 다 했다며 절벽에서 떨어뜨린 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얼굴을 망치로 뭉개버린다거나 9인의 제물을 정하기 위해 외부인 넷을 각기 잔인한 방식으로 죽여버리는 것 역시 끔찍함 그 자체였다. 영화 결말부에서 제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원한 부족민들에게 불에 타기 전,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을 건네주지만, 이들은 굉장히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다. 결국 이들 부족의 전통과 풍습은 모두 사이비 종교의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었다. 종교에 과도하게 미치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결말을 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니'는 이 마을에 녹아들게 되고,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는 남친보다 낯선 마을 사람들에게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선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대니'의 슬픔에 함께 소리 내어 울어주는'호르가' 부족에게'대니'는 닫혀 있던 마음을 열 수 있었고, 더 이상 남친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환각에 의해 부족 소녀인 '마야'와 짝짓기를 하게 된'크리스티안'의 모습을 목격함으로써 그녀는 완벽하게 그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려낼 수 있었고, 최후의 제물로'크리스티안'을 선택함으로써 완전하고 깔끔한 이별에 성공하게 된다.
즉, 이별 로맨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미드 소마'의식 자체가 '대니'를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극단적인 과정인 셈. 결국 '크리스티안'을 제물로 바쳐 불태워 죽이는 것으로써 '대니'가 온전한 자유와 치유를 느끼게 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전체주의적인 과정으로 보이긴 했지만, 어찌 됐건'대니'의 입장에서는 힐링인 것이었다. 자신과 마음이 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부족민들이 생겼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남자친구를 완벽하게 지워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결국,'미드소마' 축제에 참여한 외지인 중 살아남은 자는'대니'단 한 사람뿐.'대니'는 고통에서의 해방을 느끼며 호르가 마을에 완전히 녹아들었고, 5월의 여왕이 되어 처음으로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대니'에게 진정한 치유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정신적으로 가장 나약하고, 힘들어진 상태에서 는 손을 내밀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격려의 말을 한 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호르가 마을 사람들이 '대니'에게 건네준 손은 '대니'에게 마치 새로운 가족을 얻은 듯한 강력한 효능을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대니'에게 진정한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을까? 사실상'대니'가 메이퀸이 되고 함께 온 외지인들이 모두 죽음으로써'대니'는 마을 사람들 외에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정신적인 핀트가 어긋난 상태에서 마을 사람들을 의지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으로 그녀에게 구원의 효과를 줄 수 있다 할지라도, 결국엔 그녀 역시 사이비 종교에 구속되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치유와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일반인들에게 접근해 오랜 회유를 통해 사이비 종교의 신도로 편입시키는 통상적인 행태를 아주 극단적인 스케일의 모습으로 잘 포장해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