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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09. 2020

[넷플릭스] 퀸스 갬빗 (2020)

빠져든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눈빛에



체스 천재 소녀의 드라마틱한 성장 연대기, <퀸스 갬빗>

 최근 넷플릭스에서 호평 일색인 수작 하나가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하먼'이라는 가상의 천재 체스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성장 연대를 다룬 <퀸스 갬빗>이 바로 그 주인공. 어떻게 보면, 불우한 환경에 놓인 천재 주인공이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는 여타 드라마의 익숙한 스토리들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퀸스 갬빗>은 연출과 배우가 지닌 연기력의 힘으로 뻔하고 평범한 체스 드라마에 머무르지 않았다. 굉장히 담백하고 무난한 전개로 진행되지만,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충분히 매료될 수 있는 강렬함을 지닌 작품이었다.

연출의 힘, 최고의 몰입도

 사실 <퀸스 갬빗>의 스토리를 놓고 봤을 때, 특별한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성장물과 시대물의 특성들을 오히려 정직하게 따르는 편이었다. 하지만,<퀸스 갬빗>은 다른 작품들에게는 없는 연출의 힘을 내재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 한 편이 극중 펼쳐지는 체스 경기와 같은 고도의 긴장감과 스릴을 한시도 놓지 안고 품고 있으며 체스 경기의 공략법처럼 연출과 장면의 흐름, 배우의 연기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렇듯 섬세한 연출력을 통해 자칫 지루해지거나 템포가 떨어질 수 있는 작품에 엄청난 흡입력을 부여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체스 경기와 스토리에 모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효과를 유발하였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체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함에도 이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고아 소녀에서 세계 체스 챔피언까지 (줄거리 스포 있음)

 주인공 '엘리자베스 하먼'의 성장 스토리 자체는 굉장히 뻔하고 익숙하다.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소녀가 고아원에서 관리인 아저씨('샤이빌')에게 우연한 기회로 체스에 빠져들게 되고,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며 체스에 대한 재능을 알게 된다. 이후, 양부모에게 입양되면서 학교 및 지역 대국을 시작으로 제패를 시작하고, 양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어린 나이에 세계 챔피언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패배 따위 없이 승승장구 하던 와중에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러시아 출신의 세계 챔피언'보르고프'에게 2번의 패배를 겪으며 약물과 술에 중독되어 망가져 가게 된다. 하지만, 고아원 이후 재회한 친구 '졸린'과 자신의 성장 과정을 멀리서 쭉 지켜봐오고 응원해 준 자신의 체스 스승'샤이빌'아저씨의 죽음에 자극을 받고 러시아로 향해 '보르고프'를 꺾으며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극은 마무리 된다.

 이렇듯 스토리 자체로는 크게 특별할 게 없지만, 극 속에 내재되어 있는 치밀한 연출력과 촘촘하게 이뤄져 있는 배우의 복잡한 심리 묘사가 굉장히 뛰어났다.

오직 체스와 주인공에 집중, 클리셰적 요소 배제

 '퀸스 갬빗'을 시청하다 보면, 굉장히 담백한 방식으로 익숙한 전개를 탈피하는 시도들을 볼 수 있다.'하먼'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아원'은 악독한 교사나 주인공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하먼'을 입양한 양어머니 또한'하먼'이 뛰어난 체스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하먼'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남성 체스 플레이어나 여타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물들이'하먼'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녀를 '여성'이 아닌 체스를 두는'사람' 그 자체로 대우해준다.

 그다지 대단한 스토리 전개가 아닐 수는 있지만, 여성 서사물이나 한국 막장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겐 다소 낯선 전개방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깔끔한 방식으로 클리셰를 탈피함으로써 오로지 이 작품의 진정한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체스'와 '하먼'에게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작품 외적인 요소들로 평가받는 것을 원치 않는 감독과 작가의 견해가 가장 잘 나타났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캐릭터와 혼연일체, 눈빛으로 압도하는 안야의 연기력

<퀸스 갬빗>은 연출력도 대단했지만, 이 드라마를 이끄는 힘의 절반 이상은 주인공'엘리자베스 하먼'을 연기한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력에서 나온다. 평상시 시니컬한 성격과 대국장에서의 냉혹한 승부사다운 모습으로 인해 표정 변화가 많지는 않지만, 강렬한 눈빛과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만으로 복잡한 심리묘사를 해내는 게 매우 탁월했다. 뚜렷한 표정 변화가 없음에도'하먼'이 슬픈 건지, 두려운 건지, 패배를 직감한건지, 승리에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파악하는 데에 시청자의 입장에서 딱히 어려움이 없다. 그만큼 '안야'의 연기가 지닌 설득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안야'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뾰족한 눈빛이 지닌 마성으로 인해 극이 지닌 긴장감과 묘한 스릴감을 자아내는 데에 극적인 효과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승리를 향한 '하먼'의 열망과 언제나 자신 있고 당찬 플레이러로서의 모습이 보여준 강렬한 인상이 한동안 깊게 뇌리에 박혀있을 것 같다.

감각적인 60년대 스타일, 그리고 몰입도를 높이는 사운드

 지금까지 캐릭터와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퀸스 갬빗>은 스토리 외적으로도 볼거리가 충분히 많은 작품이다. <퀸스 갬빗>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빈티지하면서도 다소 칙칙한 화면의 톤과 대비되는 화려한 색감의 모던한'하먼'의 여러 의상들을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의상이나 건물, 인테리어 등 당시의 시대상을 구현해낸 비주얼적 요소들이 매우 훌륭한 편이었고, 당시 시대상의 배경으로 보기 힘들었던 프랑스, 멕시코, 러시아 등의 국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연출에 큰 영향을 미친 음악 또한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은데, 극에 감도는 날이 선 긴장감과 스릴과 경계, 살짝 몽환적인 느낌을 음악을 통해 배가시켜 주었다.

응원과 사랑이 뒤따를 때, 빛나는 승리

<퀸스 갬빗>의 '엘리자베스 하먼'은 체스에 대한 승부욕이 대단히 높고 챔피언이 되기 위해 굉장히 공격적인 자세로 모든 경기에 임한다.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상금 획득이 승리에 대한 첫 목적이긴 했지만,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승리를 향한 그녀의 질주는 '체스'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엔 다소 맹목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다. 그녀의 질주에는 누구의 도움도, 지원도 필요 없이 오로지 그녀의 주체적인 독립심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챔피언으로 성장해나가는 그녀의 뒷편에는 어린 시절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양어머니가 있었고, 슬럼프를 맞았을 때는 '베니(토마스 생스터)'와 '해리 벨틱(해리 멜링)'이 함께 전략을 고민해 주었으며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 러시아에서 최종 승리를 거머쥐게 된 데에는'졸린(모지스 잉그럼)''타운스(제이콥 포춘로이드)'가 곁에 있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가족과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하먼'에게는 타인의 지지와 응원이 꽤나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지지가 뒤따를 때, 그녀는 단단했고 유혹도 뿌리칠 수 있었다. 체스 천재소녀의 성장 스토리의 관점에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나약함과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감을 통해 성숙해 나아가는 한 인물의 정신적인 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의미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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