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빠진 사이다일지라도 싱그럽다 (일본영화/애니메이션 영화)
감독: 이시구로 쿄헤이
공개일: 2021.07.22
러닝타임: 87분
장르: 애니메이션, 청춘 로맨스
주인공 '체리'는 하이쿠(일본 고유의 단시)를 좋아하는 과묵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 허리가 불편한 엄마를 대신해 쇼핑몰의 노인복지센터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돕고 있다. 또다른 주인공 '스마일'은 세 자매가 함께 방송을 하는 SNS스타로 십 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두 사람은 쇼핑몰에서 벌어진 소동 탓에 서로의 핸드폰이 바뀌게 되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는데, 이를 인연으로 자주 부딪히게 되면서 상대에 대한 호감을 쌓는다.
스마일과 체리의 관계는 사라진 레코드판을 찾는 과정에서 두터워진다. 노인복지센터 회원이기도 한 '후지야마'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레코드판을 들고 쇼핑몰을 서성이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은 그 레코드판에 녹음된 목소리가 할아버지의 사별한 아내였던 것. 할아버지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스마일과 체리는 친구들과 함께 레코드판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들의 연애감정도 싹트기 시작한다.
딱 일본 특유의 오글거림과 풋풋함의 경계선에 위치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다. 제법 긴 영화 제목, '체리'와 '스마일'이라는 다소 작위적일 정도로 귀엽게 쓰인 주인공들의 이름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해버리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단편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 극 자체는 굉장히 담백한 편이며 몽글몽글한 감성이 깃든 싱그러운 여름 청춘 로맨스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인물들의 성격 탓에 무해함의 특성을 띠고 있어 여름의 향취를 품은 극에 담긴 싱그러움은 배가 된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부끄러워 하는 소년 '체리'는 과묵하고 소심하지만 단시를 쓰는 걸 좋아하는 감성적인 소년이며 사랑 앞에 용기를 내면서 한층 성장한다. SNS에서 스트리밍 BJ로 활동하는 스마일은 명랑하고 활달한 인싸 소녀인 듯하지만 실은 토끼 같은 앞니와 교정기를 부끄러워 하고, 사랑 앞에서는 다소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컴플렉스를 가진 두 소년소녀의 로맨스는 어설프고 우왕좌왕한다는 점에서 풋풋하고 꽤나 귀엽다. 극적인 연출이나 자극적인 에피소드 없이 잔잔한 흐름을 취하지만, 오히려 느린 템포와 차분한 텐션이 인물들의 감정선과 잘 어울린다.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아기자기한 작화와 애니메이션 배경의 컬러풀한 색감이다. 마치 <짱구는 못말려> 최근 시리즈들의 작화를 떠올리게 하듯 쨍한 색감과 톡톡 튀는 비비드한 컬러들을 활용했는데, 그러한 지점이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들과의 차별점으로 작용한다. 중간중간 배경음악과 함께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영상들만이 지나가는데, 보통 같으면 줄거리 없는 장면들이라 빨리감기 버튼을 누를 가능성이 높지만 청량하고 예쁜 영상미에 취해 장면 하나하나의 작화들을 모두 눈에 담고 싶어진다.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후 비슷한 류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세를 따르지 않고 본작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냄으로써 더욱 개성 넘치는 작품이 되었다.
무해하고 담백한 줄거리의 전개, 착하고 수줍음 많은 인물들의 성격 탓에 제목과 같이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은 없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에 가깝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김 빠진 사이다일지라도 청량한 색채로 담은 여름향기 특유의 시원한 맛은 남아 있으며 순수하고 투명한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순수함과 투명함이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체리'의 고백신에서는 모두가 '#여름이었다'로 추억할 만한 아련함을 선사하며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진 청춘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속도와 리듬감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했기에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이와 같다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도 조금씩 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