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히어로가 공감을 얻는 방법 (라이언 레이놀즈/조디 코머/액션/SF)
연출: 숀 레비 ('기묘한 이야기', '박물관이 살아있다')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조디 코머, 타이카 와이티티, 조 키리, 릴 렐 하워리, 채닝 테이텀(카메오) 등
장르: SF, 액션, 코미디
러닝타임: 115분
국가: 미국
'프리 시티'에 사는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금붕어에게 인사를 하는 아침을 시작으로 매일 같이 블루 셔츠를 입고 크림 하나 설탕 둘을 넣은 커피를 주문해 은행에 출근한다. 무의미한듯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와중에도 가이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데, 우연히 길을 가다 '머라이어 캐리'의 'Fantasy'를 부르며 지나가는 여자 '몰로토프 걸(조디 코머)'을 만나면서 평탄했던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든다.
사실, '프리 시티'는 현실 세계가 아닌 액션 어드벤처 게임 속 세상이었고, '가이'는 게임 플레이어들이 그냥 총으로 쏴 버리고 지나치는 일개 조연 NPC에 불과했다. 그리고 '몰로토프 걸'은 프리 시티의 제작사인 수나미의 사장 '앤트완(타이카 와이티티)'으로부터 빼앗긴 소스 코드를 되찾기 위해 게임의 만렙을 찍은 개발자 '밀리'였다. 플레이어와 NPC의 만남이었지만 가이는 첫눈에 그에게 반해 각성을 하게 되고, 자아를 갖게 된 그는 '프리 시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집고 다니면서 수나미의 직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총질과 폭력을 일삼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가이'는 사람 한 명 해치지 않고 단기간에 만렙을 찍는 기이한 유형의 캐릭터였고, 착한 성품의 그에게 호감을 느낀 '밀리'는 앤트완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한 공조를 시작한다. 공간은 다르지만, 너와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프리 가이>는 게임을 소재로 한 SF/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떠오르게 하고, 주인공이 각성하기 전까지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트루먼 쇼>를 생각나게 한다. 이 밖에 <픽셀>이나 네이버 웹툰 <전자오락 수호대>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프리 가이>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와도 같은 단역 NPC 캐릭터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그를 영화의 히어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새롭다.
게임 소재의 영화인만큼 각종 패러디와 오마주들이 쉴새없이 등장하는데, 짧은 순간들이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캐치하는 것이 <프리 가이>를 보는 가장 큰 묘미 중 하나다. '포트나이트', 'GTA', '심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의 특징들을 차용했고, 영화에서의 패러디도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크리스 에반스'의 깜짝 등장과 함께 액션신에서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헐크'의 팔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일으켰던 장면 중 하나. <스타 워즈>의 '라이트 세이버', <스텝 업>의 댄스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채닝 테이텀'의 카메오 출연 등 이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패러디 요소들이 수없이 많다. 관객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가상의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패러디적 요소를 풍부하게 가미함으로써 마이너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었다. (역시 저작권 깡패 '디즈니'의 위력은 대단하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코미디 전문 배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코미디 영화의 비중이 상당히 많다. 특히 최근 5년간 흥행을 거둔 그의 작품들이 <데드풀>, <킬러의 보디가드> 시리즈라서 더욱이 유쾌하고 가벼운 이미지가 강하게 굳혀진 듯하다. 그만큼 탁월한 코미디 연기를 소화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강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코미디 장르에만 국한된 연기를 보여 오히려 배우로서는 한계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장르의 영화라고 해서 다 같은 코미디는 아니다. <프리 가이>에서 연기한 '가이'는 <킬러의 보디가드>, <데드풀>과는 또다른 퍼스널리티를 가진 캐릭터고, '라이언 레이놀즈'는 마치 코미디 장르에 통달했다는 듯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연기로 독특한 히어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가이'는 SF/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드물게 성품이 선하고 순수하며 남을 절대 해치지 않고, 사랑 앞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을 보이지 않는 순정남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다른 배역일 때보다 더욱 순수하고 맑은 톤의 목소리를 사용하였고, 각성 이후에는 순수한 광기가 반영된 눈빛과 액션들로 재미를 유발했다. 연달아 코미디 영화를 찍으면서 그의 연기가 식상해질 법도 하지만, <프리 가이>에서만큼은 여전히 생동감이 넘친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코미디 영화는 믿고 보는 수준이 되었다지만은 원톱 주연의 존재감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 다행히 드라마 시리즈 <킬링 이브>, <기묘한 이야기>에서 한국인들에게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조디 코머'와 '조 키어리'가 주인공을 톡톡히 서포트 하며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전개가 느슨해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특히 게임 속 여전사의 카리스마와 현실 세계 속 게임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2가지 자아를 선보인 '조디 코머'는 주변 인물들과의 케미가 상당했다. <킬링 이브>를 최근에 정주행해서 아직까지는 사이코패스 빌런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데, 완벽하게 다른 비주얼로 등장하는 본작에서도 그의 매력은 충만했다.
<프리 가이>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이끌어나가는 영화이지만, 게임 소재의 SF영화인만큼 화려한 액션 연출은 물론 비주얼적으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실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연상시키는 듯한 전투신의 연출은 소재가 가진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의 능력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순식간에 무기를 교체하면서 싸움을 이어가는 스릴감과 가상 세계다운 비현실적인 동작들의 구현, 홀로그램 AR 형태로 깔린 선글라스 속 시선들까지, 눈길을 끌어당기는 요소들의 연속적인 등장에 지루할 틈이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명장면이라고 느낀 부분은 '조디 코머'와 '라이언 레이놀즈'의 오토바이 액션신. 특히 음악과 함께 창문을 깨고 창고를 탈출하는 장면은 연출, 비주얼, 음악 3박자가 완벽했다.
참고로 필자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비롯한 대부분의 게임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극에서 '밀리'와 '키스'가 제작한 '프리 라이프'처럼 전투를 하거나 다른 캐릭터를 죽이지 않고, 자신만의 마을을 꾸민다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임은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프리 가이>는 극의 빌런인 '앤트완' 캐릭터를 내세워 단순한 재미와 자극적인 요인만을 앞세운 게임의 몰개성화와 유해성 등에 대한 지적한다.
다양한 게임이 존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적이고 완성도가 부족한 게임들이 양산된다면 그러한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AI가 자생적으로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냈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소재를 끌고 왔지만, 자극성과 유해함과는 거리가 먼 '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착하고 평화로운 게임이라도 충분히 유쾌하고 재밌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특히 '앤트완'이 만든 게임보다는 '밀리'가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가 가진 게임 개발자로서의 소신에 대해 이입하기 쉬웠다. 남들이 재미 없다는 이유로 깎아내렸을 지는 몰라도, 꿋꿋이 스스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지켜왔던 소수들이 그러한 게임을 즐겨온 이유가 극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