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강박이 낳은 무리수 (카밀라 카베요/이디나 멘젤/뮤지컬)
감독: 케이 캐넌
출연: 카밀라 카베요, 이디나 멘젤, 니콜라스 갈리친, 피어스 브로스넌, 빌리 포터, 제임스 코든
장르: 뮤지컬, 코미디
배급: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러닝타임: 113분
아마존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 <신데렐라>는 디즈니 원작에서 제목과 소재만 따왔을 뿐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스토리의 전개를 취한다. 따라서 본작은 애니메이션 혹은 동화 속 '신데렐라'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영화라 생각하고 감상하는 게 편하다.
아버지를 여의고 표독스러운 새엄마 '비비안(이디나 멘젤)'과 새언니 2명과 함께 살아가며 구박을 받고 집안의 온갖 시중을 드는 '엘라(카밀라 카베요)'. 하지만 그에겐 옷을 디자인하는데 소질이 있었고, 모진 생활에도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한편 아버지인 왕으로부터 빠른 결혼을 강요받던 왕자 '로버트(니콜라스 갈리친)'는 근위병 교체식 때 우연히 만난 신데렐라에게 반하게 되고, 신분을 숨긴 채 그를 무도회에 초대한다. 요정과 생쥐들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드레스를 갖춰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 신데렐라. 왕자와 신데렐라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신데렐라에겐 사랑 이상으로 중요한 자신의 꿈이 있다.
<신데렐라> 원작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강조한 구시대적인 작품이고, 21세기의 원작 그대로의 내용을 차용했다가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메시지로 인해 비판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1년 버전의 <신데렐라>는 원작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시류에 부합하는 스토리를 구현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쓴 듯하다. 왕자로부터 간택받는데 그쳤던 신데렐라는 디자인에 대한 재능과 자신의 꿈을 좇는 주체성이 부여된 인물로 변화했고, 왕자는 그의 꿈을 존중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 왕비 또한 수동적인 여성의 위치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고 왕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왕자의 여동생인 '그웬' 공주가 왕위 계승자로 발탁되는 등 여성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주변 캐릭터들 또한 원작과 다른 점이 제법 많다. 신데렐라를 모질게 핍박하던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생각보다 신데렐라를 심하게 괴롭히지 않으며 특히 새언니들과 신데렐라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다. 악독하고 야욕만 많던 새엄마 캐릭터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는 서사를 부여하였고, 단순히 신데렐라에 대한 미움과 질투 때문만이 아닌 현실적인 이유로 그의 꿈을 저지시키려는 역할을 한다. 조연이지만 스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요정 대모는 성별을 젠더리스로 설정하는 파격을 시도하였는데, '빌리 포터'가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이를 소화했다.
하지만, <신데렐라>가 시도한 여러 가지의 변화들은 한 자리에 모여 온전하게 섞인다기 보다는 변화에 대한 지나친 압박에서 비롯된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신데렐라>처럼 18-19세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더라도, 최근작들은 어느 정도의 'PC'한 설정을 받아들여 현세대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변화를 주기는 한다. 다만, 본작은 이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과한 무리수를 두었고 모든 인물의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는 흐름 하에 스토리는 이도 저도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영화 <더 프롬>에서도 느꼈던 지점인데, 사운드트랙의 가사와 여성 캐릭터들의 대사들이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어투라 교훈을 남기기 위한 강박으로만 여겨진다.
주조연 여성 캐릭터들에게 능동성을 부여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꾸역꾸역 넣으려다보니 어색한 흐름들이 군데군데 발생한다. 로버트 왕자의 부모인 왕과 왕비의 이야기는 다소 상류층 여성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수동적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나 전개상 불필요해 보였으며 갑작스레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신데렐라와 화해의 무드를 형성하려 하는 계모의 태도는 정신개조 수준의 급격한 변화라 관객으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한다.
<신데렐라>가 아무리 뮤지컬 영화라지만,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들과 달리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거의 부재하다.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한 'Million To One'이 그나마 돋보이는 곡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곡만 세 번에 걸쳐 등장하고 대부분의 사운드트랙은 대중에게 유명한 메인스트림 가수들의 히트곡들이 대신한다. '마돈나'의 'Material Girl', '퀸'의 'Somebody To Love', '에드 시런'의 'Perfect', 'Linda Lyndell'의 'Whatta Man',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의 'Let's Get Loud'까지. 대중적인 히트곡들의 리메이크로 친숙한 느낌을 자아낼 수는 있지만,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로서의 <신데렐라>의 정체성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는 마치 뮤지컬 하이틴 드라마 <Glee(글리)>의 '신데렐라' 버전 캐스트로 보이거나 혹은 SNL의 뮤지컬 콩트로 보이게 만드는 역효과를 만든다. 무엇보다 사운드트랙의 비중이 극의 줄거리를 잠식시킬 정도로 큰 편인데, 신선한 오리지널 트랙이 단 하나도 수록되지 않아 뮤지컬 영화로서의 메리트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무리수를 많이 두었지만, 그 다양한 요소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뮤지컬 영화라고는 하지만, 뮤지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주인공들의 서사를 전달하는 줄거리의 완성도가 빈약하고 사운드트랙 또한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재해석한 정도에 불과해 뮤지컬 영화로서의 가치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결말부의 'Let's Get Loud' 음악과 함께한 플래시몹 시퀀스는 작품이 조금이나마 품고 있던 <신데렐라>에 대한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리고 마치 B급 발리우드 영화를 본 듯한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결국 남는 것은 극중 훌륭한 가창력을 선보인 '신데렐라' 역의 '카밀라 카베요'와 계모 역의 '이디나 멘젤'의 노래 뿐. 하지만 <신데렐라>는 이들의 커버 무대를 보기 위함이 아닌 한 편의 영화이기 때문에 작품에 큰 강점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디나 멘젤'의 노래에서는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 몰입이 다소 깨지기도 했다. '카밀라 카베요'의 가수 커리어를 회복시켜주길 기대했던 중요한 작품이지만,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듯 최악을 겨우 면한 수준의 작품으로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