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힐링 로맨스가 인기의 비결 (김선호/신민아/이상이/tvn)
감독: 유제원
출연: 신민아, 김선호, 이상이 등
극본: 신하은
장르: 로맨틱 코미디
방영횟수: 16부작
방영 초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시청률 11%를 돌파하며 인기 고공행진 중인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빈센조>, <마인>으로부터 이어져온 tvN 토일드라마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데, 서스펜스와 제작비를 앞세운 두 작품과 달리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소소한 일상물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시청률 상승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최근 <펜트하우스>, <더 로드: 1의 비극>, <하이클래스> 등 피와 싸움으로 점철된 피카레스크 장르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다시피 청정한 시골 로맨스로 독보적인 포지션을 확립한 <갯마을 차차차>. 과연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갯마을 차차차>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대규모 스케일의 넷플릭스 드라마나 재벌과 상류층이 등장하는 방송사 드라마들과 달리 '공진'이라는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비슷한 예로 2년 전 방영됐던 <동백꽃 필 무렵>을 들 수 있는데, 생각보다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일상 로맨스물이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주류 소재의 작품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이라고는 작은 어촌 마을 뿐이고, 정겨운 동네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이 전개하여 소재 자체의 재미는 떨어질 수 있다. 날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전개를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특성상 <갯마을 차차차> 같은 작품은 살짝 지루하거나 유치해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잔혹하고 자극적인 작품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해당 장르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하기도 했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아진 탓에 오히려 무해하고 따뜻한 로코물 <갯마을 차차차>로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극 초반부터 뛰어난 케미를 형성했던 주인공 커플 '홍두식'과 '윤혜진'을 연기한 '김선호'와 '신민아'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첫 주인공을 맡은 김선호는 능청스럽고 오지랖 넓은 홍두식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자칫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에게 독특한 매력을 부여했다. 초면부터 사람 가리지 않고 해대는 반말, 지나칠 정도로 남에게 참견하는 오지랖, 넉살인지 상대를 멕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쿨한 태도까지. 2000년대 초반 개봉한 영화 원작에 충실한 탓에 극 초반부의 모습들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홍두식'의 서사를 풀어낼수록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캐릭터에 설득력을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솔직히 유교보이의 입장에서 동년배건 어르신이건 모두에게 반말을 시전하는 태도가 껄끄러워보이긴 했지만, 혜진의 부모님에게도 예외없이 반말을 사용하는 대쪽같은 그의 철학에 이제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스타트업>을 기점으로 김선호의 인기가 무섭게 상승했기 때문에 그의 인기만으로 방영 초기부터 빠르게 화제성을 선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배우 개인의 인지도에 기대어 극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기 보다는 그의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본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김선호'와 달리 '윤혜진' 역으로 함께 극을 이끄는 '신민아'는 <오 마이 비너스> 이후 6년만에 로맨틱코미디 장르로 돌아왔다. 한때 로맨스 장르에만 국한된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는 평을 받았으나 <내일 그대와>, <보좌관> 등 다양한 장르를 거치며 연기력이 크게 발전했고, 물이 오른 연기력은 다시 돌아온 로맨틱코미디에서 빛을 발한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 로코 장르에서 특화된 모습을 보여왔듯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과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여전히 돋보인다.
극 초반에는 까탈스럽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부각되었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마을 사람들은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드러나고 말은 뾰족해도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같은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완연한 호감 캐릭터로 거듭났다. 위기에 처했을 때, 남자 주인공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외지인이지만 마을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주체적인 캐릭터로 자리한다. 이러한 면모 덕에 배역을 맡은 '신민아'가 다수의 로맨스물을 소화해 왔음에도 캐릭터가 뻔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장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위해 주변 인물들을 그저 소모적인 장치로 활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주인공들의 직업이 그저 작품의 배경을 위한 액세서리 정도로만 여겨지고, 일은 뒷전으로 하고 사랑만을 우선시하는 전개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갯마을 차차차>는 조연인 마을 사람들의 에피소드도 회차마다 한 명씩 꾸준히 다루고 있고, 치과의사인 '윤혜진'과 마을의 반장을 자처하는 '홍두식'의 직업의식도 꽤나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비록 작은 규모의 배경을 택했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작품이 가진 한계를 극복해낸 셈.
이 때문인지 조연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존재감도 강렬하다. 하나 같이 밝고 활기찬 인물 같아 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사연들을 품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신파 섞인 스토리를 첨가하되 감정의 과잉으로 이어지지 않고 주인공들과 함께 갈등들을 해결해감으로써 작품에 다채로운 매력을 불어넣는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만을 부각한 전형적인 로맨스물을 탈피하고 양념 같은 조역들의 이야기를 모두 활용함으로써 토속적인 분위기를 가진 주말극처럼 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무난한 일상 로맨스물의 흐름에 긴박함을 더하기 위해 범죄와 미스테리적 요소를 조금씩 가미하기 시작했으나 <동백꽃 필 무렵>처럼 스릴러와 로맨스의 요소를 매끄럽게 병합시킬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애정 전선을 확인시키는 장치로 범죄를 활용한다는 게 다소 불편하게 여겨진달까. 물론, '홍두식'의 과거 5년의 서사가 가진 미스테리를 아직 풀어내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평가가 바뀔 만한 여지는 남아있다.
지금에서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부분이지만, 원작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 홍반장>을 그대로 따른 설정도 바람직해보이진 않았다. 2004년에 개봉된 영화인만큼 어느 정도 설정에 변화를 줘도 좋았을 법한데, 과거의 설정을 그대로 따른 초반의 전개 탓에 시대착오적이라 느껴질 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물론 인물들 간의 오해가 풀리고, 주인공 간의 케미가 발전하면서 대개 해결되기는 했다만. 작중 배경 그리고 원작의 스토리 때문에 2021년의 드라마로 하기에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특유의 순박하고 정겨운 매력이 우울함으로 가득한 현재 시국에 제대로 먹혀든 것 같기는 하다. '이하늬'의 코믹 연기가 제대로 캐리하는 중인 <원 더 우먼>이 단순한 플롯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또한 비슷할 것이다. 현재 6화를 남겨두고 있는데, 삼각관계의 종식과 함께 의문점이 가득한 '홍두식'의 서사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