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칼국수에는 주연인 칼국수면 외에 들어가는 재료가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먹어온 우리 집 칼국수가 그랬었다. 김치칼국수는 김치만, 호박칼국수는 호박만 듬뿍 넣고 끓이는 스타일. 멸치국물 대신 맹물로만 끓였었다. 난 그런 칼국수가 그때도 지금도 나쁘지 않다."나는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딱 김치칼국수다!"라고 자기소개 확실히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초라해 보여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 더 매력적이게 다가온다.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불타올랐을 때는 칼국수면을 직접 밀었다. 밀가루 반죽해서, 숙성해서, 밀어서... 또 산더미 같은 설거지에 방바닥 청소를 하면서.만두피도 주전자뚜껑으로 눌러 만들곤 했다.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공들였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지금은 간편하게 사다 쓴다. 혼자 먹기에 양이 많아서 200g만 덜어놨다.
오늘 소개할 무칼국수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소화력이 약했던 할머니는 무를 듬뿍 넣은 칼국수나 수제비를 아주 좋아하셨다. 무생채, 무나물, 무밥, 무물김치... 할머니 영향을 받아 무로 만든 음식을 골고루 먹고자랐다.
무칼국수를하려 냉장고를 봤더니 무 한토막이 있었다. 양이 좀 부족하지만 자투리 채소 처리해야 하니 채 썰어서 한 줌 준비했다. 부추 반 줌은 조리가 다 끝난 칼국수에 고명으로 쓸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무칼국수를 만들어보자. 우선 기름 두른 팬에 마늘 한 수저 넣고 볶다가
채 썬 무를 넣고 달달 볶다가 멸치액젓 한 수저 넣고
무가 살캉하게 익을 때까지 골고루 볶는다.
난 멸치육수를 쓰지 않는 대신 멸치액젓으로 재료를 볶는 과정을 꼭 거친다. 재료를 볶아 간을 들인 것과 맹물을 붓고 난 다음 간을 맞추는 것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가 국물맛이 깊다고 설명할 수 있다.
물은 재료의 2배 넣는 것이 적당하다. 칼국수 넣고 끓이면서 추가해도 되니 처음부터 물 양을 많이 잡지 않는다. 물이 끓는 동안
칼국수를 찬물에 가볍게 헹궈 겉에 묻은 가루를 제거해 준다. 국물색이 탁하지 않고, 맛이 깔끔해지니 헹굼 코스도 잊지 말기!
국물이 끓으면 헹궈서 물기를 제거한 칼국수면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마트에서 파는 칼국수는 잘 안 익어 시간을 충분히 주고 익히는 편이다. 중간에 맛보기 하고 부족한 간은 국간장 또는 참치액으로 맞추기.
잘 익은 칼국수를 그릇에 담아 부추를 올리고 깨소금 탈탈탈.
무칼국수는 국물맛이 시원하고 속이 편해서 일단 좋다. 나도 어느덧 소화력 걱정을 할 나이가 되다 보니 자주 해 먹게 된다. 국물에 적당히 익은 부추 씹는 맛과 향이 너무 좋은 무칼국수. 신김치 올려서 후루룩 먹어보자. 점심 메뉴로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