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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Jan 10. 2016

이제 줄무늬만 봐도 눈물날 것 같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고


처음 영화제목을 들었을 때, 난 <빌리 엘리어트>나 <꼬마 니콜로>와 같이 아이들이 나오는 가벼운 영화로만 생각했다. 영화 추천 목록에서 많이 봐왔지만, 주변에서 이 영화를 본 친구는 없는 것 같았다. 언니와 술 한잔 하고 정말 우연찮게 보게 된 영화.

1시간 40분 남짓한 러닝타임이었지만, 그 영화에 대한 여운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영화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온 소년 브루노가 군인인 아버지의 발령에 따라 유대인 수용소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유대인 소년 슈무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눈길을 끄는 영화 제목은, 번호가 적힌 수용복을 입고 있는 '슈무엘'을 가리킨다.



8살 아이의 눈에는 수용복이 '줄무늬 파자마'로 보였고, 수용복에 적힌 번호는 '게임'을 위한 번호로 보여진다. 길을 잃어 수용소 철창 앞에서 수용소에 갇힌 슈무엘을 만났을 때, 브루노는 "불공평해, 넌 사람많은 곳에서 재미있지만, 난 여기에 갇혀 엘지내야 하다니!" 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아이의 눈엔 아름답고 예쁜 것만 보였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아이들의 동심가득한 유쾌한 이야기가 아닌, 잔혹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나치 정권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도 모르게 브루노의 그 한마디에 '아' 짧은 탄식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예쁜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도록 하고 싶은 것은, 브루노의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었다. 수용소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집 마당에 타이어로 만든 그네 하나만 만들어둔 채 마당에 나가지 말라는 말로만 아이를 타일렀다. 그렇게 브루노는 부모의 눈을 피해 수용소를 찾아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또래친구 '슈무엘'을 만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이의 만남을 보며, 이미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에 영화의 결말도 비극일 것임을 예측했는지 모른다. 같이 영화를 본 언니는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언젠가 독일 여행을 갔다가 보았던 수용소에서의 잔혹했던 처형방법을 기억해냈다. 벌거벗은 수용자 모두를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가두고, 천장에서 독가스를 방출해 수십명 수백명을 한번에 죽였다는 그 잔혹했던 나치의 행적을.

영화가 끝나자 찝찝한 것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비극적인 결말의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고난 후에 드는 느낌이겠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한 비극적인 영화를 볼 때면 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몇십년 몇백년 전의 그 참혹하고 다시 일어나선 안될 역사이야기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인지 나도 모르게 생각해보게된다. 분명 그때보다 우린 더 풍족하고 잘 살고 있지만, 과연 차별과 지배, 감시, 전쟁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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