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에세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최근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한수희 님의 에세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얼마전 우연히 작가 인터뷰 기사로 접하게 된 책이다. 종이책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e-book을 빌려 읽는데, 이 책은 신간인지 구하기가 어렵다. 책 한권을 제대로 읽은 건 아니지만, 책 속 글귀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참 따뜻해진다.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이전에는 소위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강연이라던가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 하지만 여행에 나온 지금, 나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우리 옆 사람의 이야기를, 평범한 사람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에세이를 읽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네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하지만 받아들여지기 나름인게 인생사이기에, 이 사람은 이걸 이렇게 소화해내는구나, 배울 수 있는 책. 아니 배울 수 없더라도 적어도 이 사람도 나처럼 찌질하고 힘들게 사는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사람사는 인생이 다 비슷해서인지, 나만 초라하고 작은 것 같아도 책 속에서는 나보다 더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절로 위로가 되면서 웃음이 난다. 우리, 다 똑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거구나, 하고.
Paris, France
세상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처럼 인생은 일직선처럼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인생의 막막함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열심히 걷고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걷는게 때로는 막막하기도 하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은데도,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나서는 무릎을 탁 쳤다.
사람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부딪치고 깎이면서 진짜 사람이 되어간다. 좋아하는 것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언제나 가장 좋을 때 "그럼 여기까지" 하며 쿨하게 자리를 뜨는 걸로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다. 누가 뭐라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걸어도 걸어도 우리는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살아도 살아도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걷는 것 뿐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부딪치고 깎이면서 그저 걸어갈 뿐이다. 우리는 불완전하지 않다는 걸 그대로 인정하면, 내가 나선으로 걷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 나는 더이상 걷는 게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겸허하게 오늘도 걸어가야겠다.
불친절한 인생에 담담할 것.
어떤 불운 앞에서도 씩씩할 것.
우아하게 실패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