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의 1박 2일 껄로 -인레 트래킹을 떠올리며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두 달째, 나는 여전히 이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기 바빠 불과 몇 달 전 세계여행을 하다 돌아왔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낸다. 거짓말 같이 한국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해버린 우리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따금씩 우리의 여행을 꺼내보며 그 때 느꼈던 감정과 그 공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래킹이 너무나 그리운 요즘, 여행을 시작한지 한 달쯤 시작했던 우리의 첫 트래킹을 떠올려본다. 그곳은 미얀마였다.
미얀마 껄로(Kalaw)에서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인레(Inre) 호수로 향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1박2일 혹은 2박3일간의 트래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체력이 바닥인 내게, 특히 1박2일간의 트래킹 코스는 또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그 당시엔 엄청난 도전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후 했던 트래킹들을 떠올려보면 귀여운 수준이다)
한국인 언니 세 명과 가이드 둘까지 일곱 명이 한 팀이 되어 트래킹에 나섰다. 길이 험난하진 않았지만, 평지나 논을 지나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작은 산도 넘어가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울퉁불퉁하고 소똥으로 범벅인 길이었지만, 터벅터벅 흙길과 잔디를 밟는 게 좋았다. 드넓은 평야와 적토, 듬성듬성 나있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웅장하진 않지만 소박한 매력이 있었다. 빨간 고추를 말리고, 밀을 추수하는 모습까지 정겨웠다. 꼭 우리네 예전 시골 모습 같았다. 한참을 걷다 지칠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시릴만큼 시퍼런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노란 황토길과 녹음이 짙은 나무들, 그리고 파란 하늘까지 자연 본연의 색들이 참 예뻤다. 언제 지쳤냐는 듯 피곤이 싹 씻겨나갔다. 눈부실만큼 반짝이는 날씨였다. 크게 한숨 돌리고 다시 걸음을 떼었다.
껄로 트래킹이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사실 멋진 자연 경관이 아니라, 해발 1400m 고산지대에 사는 미얀마 소수부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빠오족이 모여사는 파투파오 마을에 들렀다. 미얀마의 소수부족들은 각자의 두건이나 옷 색깔, 언어가 모두 다른데, 그 중 빠오족은 검은 옷에 빨간 두건을 두르고 있어 유독 눈에 띄었다. 한 할머니가 천천히 직물을 짜고 있었다. 직물 짜는 걸 처음 본 우리는 그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곱게 짜여진 두건과 론지(미얀마 남자들이 입는 치마), 바지들이 곱게 개여져 있었다. 할머니 주위로 예닐곱살의 아이들이 더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모여 들었다. 한쪽에선 빨간 고추를 마당에 말리고 우물물을 길러 빨래를 하고 소에 여물을 먹이고 있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느 나라 제품인지도 모를 만큼 수많은 공산품들을 사용하는데, 문명과는 동떨어진 이 부족사회에선 그들끼리 자급자족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게다가 아직도 자기 부족들만의 문화를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나라가 세계화되는 것엔 많은 이점이 있지만, 자기만의 문화를 잃어버린 채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한편으론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보다는 급격한 성장, 도시화에만 집중해왔다. 그래서 난 자기 나라, 자기 지역, 자기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뉴욕 같은 대도시보다 아직 때묻지 않은 미얀마 같은 곳이 더 좋은 이유다. 인프라도 열악하고 음식도 맞지 않지만, 그래도 미얀마가 좋다.
식사시간이 다 되어 현지인 롯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과연 세계 최대의 불교국가답게 그 작은 방에 불상을 모셔두고 매일 향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과연 그들의 불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트래킹을 하면서 가이드들은 주변에 보이는 나무나 열매를 알려주며 직접 맛보고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길에 종이처럼 얇은 게 자꾸 밟혔는데, 알고보니 대나무 껍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허물벗듯 벗겨진 거란다. 생강나무에서 생강을 잘라 향을 맡아보기도 하고, 홍고추를 맛보기도 했다. 다들 지쳐갈 때면 가이드가 풀을 꺾어 삐익삐익 풀피리를 불어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오감만족 트래킹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더욱이 이렇게 풀과 나무, 자연을 벗삼아 노는 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자꾸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트래킹을 하면서 눈에 띄었던 건 성인 사내 여럿이 둘러 안을만한 둘레의 나무들이었다. 미얀마에선 숲에도 동네 어귀에도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그만한 규모의 나무를 본 적이 없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굵고 길게 뻗은 가지들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찌나 튼튼한지 사람 몇명이 가지 위에 올라타도 끄떡하지 않았다. 뿌리도 수십 미터까지 뻗어져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적어도 350년 이상된 나무란다. 그 거대한 나무 하나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집터만 했다. 트래킹에 지친 여행객들이 모두 쉬었다가도 남을 만한 크기였다. 잘 자란 나무 하나가 수십 명의 여행자, 농부의 땀을 식혀주는 게 보기 좋았고 부럽기도 했다. 과도한 벌목으로 민둥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모습이 대조되었다. 다시 한번 성장과 보존 중 무엇이 더 중한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껄로에서 여섯 시간쯤 걸어 우리가 묵을 롯지에 다다랐다. 두 마리의 큰 소들이 있는 외양간 위층에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고산지대여서 해가 떨어지자마자 금세 기온이 떨어졌다. 두터운 옷에 패딩까지 잔뜩 껴입고 핫팩까지 장착했는데도 모두들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설쳤다. 먼지 그득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려 덮었는데도 야외에서 자는 것처럼 추웠다. 아침이 되자 다들 밤새 얼마나 추웠는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눈도 못뜬 채로 밖으로 나가 차가운 우물물을 퍼서 세수를 했다. 손과 얼굴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오들오들 떨며 양치를 하는데 픽픽 웃음이 새었다. 우리,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아왔구나. 새삼 한국에서의 내 삶이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트래킹하는 그날, 나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살기 편리하고 화려한 도시에서가 아니라, 둘이 함께 고생하는 지금 이 순간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꼬따오에서 눈물콧물 흘려가며 배운 스쿠버 다이빙이 그랬고, 껄로에서 인레까지 하루에 20km씩 걸어가며 서로 다독여주는 그날이 딱 그렇다. '앞으로 우린 더 잘해나갈거야. 이렇게 서로 다독여주며 잘 살아가자'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걸음을 내딛다가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멋진 풍경이라기보단, 타박타박 한걸음씩 내딛는 그 과정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걸으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한국에선 왜 진작 이런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란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보는 시간,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꿔보는 시간은 동네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였다. 이렇게 당연한 게 진짜 당연한 거고 살면서 꼭 필요한 거라는 걸, 우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와서야 깨닫는다. 머리로만 알고 있고, 실제로 행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있었던 것과 매한가지니까. 우리는 이제 텁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싶은지 조금씩 그림을 그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