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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Jul 08. 2018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내 생애 처음 마주한 <죽음>

외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오빠, 우리 증조 할머니 돌아가셨대."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돌연 무서웠다. 할머니 어떡해, 가시는 순간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외롭게 가셨을 할머니가 불쌍해 자꾸 눈물이 났다. 한달 전 찾아뵈었을 때만해도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웃어주셨는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눈앞이 아득했다. 내 생애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린 첫 순간이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한 적이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102세로 마을에서 최장수 할머니셨다. 젊을 때부터 똑부러지게 자식들을 키워내신 할머니는, 백세가 넘으셔도 항상 또렷한 정신으로 증손주들이 어디서 뭐하는지도 다 기억해내셨다. 한달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찾아뵈었을 때도 내가 최근 수원으로 이사한 걸 기억하시며, "혜진이는 그래서 수원에 있다고? 인천 밑에 수원?"하며 젊었던 당신이 경기도에 가서 봤던 풍경들을 풀어놓으셨던 할머니였다. 여행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찾아뵈었을 때도 "그래그래, 조서방. 다음에 또 놀러와~" 하며 따뜻하게 남편 손을 꼭 잡아주셨던 할머니였다. 고령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력과 정신력에, 우린 늘 감탄하곤 했다. 그랬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어쩌면 몇년 전부터 언젠가 닥칠 이 순간을 생각하며 더 자주 찾아뵈려고 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 순간이 닥치자 더 찾아뵙지 못했던 마음에 자꾸 눈물이 났다.


밤 9시. 서둘러 남편과 함께 제천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남편은 "지난 번에 한과 맛있게 드시는 거 보고, 나도 다음번에 찾아뵐 땐 꼭 한과 한 봉지 사다드리고 싶었는데"하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 마음이 참 고맙기도 하고, 손주사위가 사다주는 한과를 보면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하니 또 코끝이 찡했다. 


12시가 가깝게 도착한 장례식장엔, 밤길에 서둘러 달려온 친척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이미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엄마가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작게 걸려있었다. 겨우 참았던 울음이 또, 그 작은 사진을 보고 울음이 터질 뻔 했다. 사진은 또 왜 이리 작게 걸려있는걸까. 내 품에도 쏙 안길만큼 작았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갑자기 기력이 좋지 않으셔서 노인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답답한 병원 생활이 많이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가 병원에 갔을 때도 할머니는 자꾸만 없는 신발을 신고 싶다며, 그렇게 신발을 찾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뚜렷한 정신에 화장실도 못 가고 성인 기저귀에 일을 보아야 하는 것도 아마 당신에겐 꽤 큰 스트레스로 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신력으로 이렇게 오래 사셨을지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가, 그런 병원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만 정신을 내려놓으신 건 아닐까. 결국 할머니는 일산에 사는 손주(작은이모)까지 다 보고난 그날 저녁 주무시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 엄마가 병원에 갔을 때도 이야기 많이 하시고 좋아보이셨다는데, 딱 이틀 뒤 들은 소식은 모두에게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엄마는, 할머니 쓰시라고 로봇 청소기를 막 사다드렸던 참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엄마는 내내 할머니가 쓰지도 못하고 가신 로봇청소기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진작 사다드리려고 했는데 먹고살기 바쁘다고 이제야 뒤늦게 사다드린 게 참 죄송하다며, 더  미리 챙겨드리지 못한 당신을 자책했다. 한과를 사다주지 못한 남편과 로봇청소기를 늦게 사다주었다며 슬퍼하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나는 그 예쁜 마음들이 생각나 장례식장에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 1879


나는 사실 한번도 죽음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죽고싶을 만큼 괴로운 적이 왜 없었겠느냐만은, 그건 '죽고싶을만큼' 힘들다거나 지쳤다는 그 일시적인 감정상태일 뿐이지, 정말 내가 죽고싶은 건 아니었다. 나의 죽음 뿐 아니라, 타인의 죽음에 대하여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괜히 못된 생각이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세게 뒤흔들며 그 단어를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괜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정 탈 것 같고,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떠올리면 안되는 걸 떠올린 사람처럼. 


그렇게 나에겐 <죽음>이란 단어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꺼림칙한 주제였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선 그렇게 자주 고민하면서, 한번도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먼 훗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일지 당장 닥칠지 모르는 그 순간을 상상하는 건 어쩐지 눈앞이 아득할 정도로 아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그 당연한 명제를 알면서도, 한번도 나의 죽음 혹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주제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 톨스토이


나는 이번에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떠나가는 자와 남겨진 자,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다시 마주하게 됐다. 더 이상은 피할 수만은 없는 주제. 사람들은 누구나 죽지만,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한들, 아직까지 인간의 수명을 예측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운명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바보같이 또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는 이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힘이 바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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