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린 Jun 10. 2018

다들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들

"그래서 그날 밤엔 너무 속상해서 잠도 안 오더라구."
"내가 너무 사람을 믿었나봐. 너무 마음을 다 주면 안되는건데."


친구와의 대화가 아니다. 어젯밤, 엄마와 나눈 대화다. 이젠 엄마에게 무언가 배우고 물어보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서로의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게 더 많아진 우린, 어느새 모녀 사이라기보다 친구에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요즘 엄마와의 대화에서 자꾸만 나를 본다. 직장도, 직장동료도, 친구들까지 모두 나와 다른 환경 속에 사는 엄마. 


그런데도 그녀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자꾸만 겹친다. 사람들 사이의 미세한 신경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을 때.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이 뒤에선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걸 알았을 때의 그런 기분들.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그런 순간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순간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런 아찔한 순간들. 엄마도, 나처럼 그런 순간들을 부딪쳐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식 표현으로 '돌도 씹어먹을 것 같이' 강하고 독하게 살아갈 것 같았던 엄마였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엄마도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부서지는 '한 사람'이었고 '한 여자'로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그 모습까지, 어쩜 나와 꼭 닮았다. 


어젯밤 엄마의 고민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쿵 하고 주저앉는 걸 느꼈다. 우리 엄마, 참 여리고 약하구나. 저녁을 거하게 먹고 어느새 어둑해진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법 어둑해져 서로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던 그 어둠도 새삼 고마웠다. 그 어둠이 아니었다면, 순간 당황한 나의 표정이 그대로 엄마에게도 비쳐졌을 테니까. 


상처받은 사람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 얼핏 다 나은 것 같아 보여도 통증은 불현듯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이들은 마음의 지옥을 견뎌내는 생존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지만, 지금 여기서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아다닌다.

-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중에서


내 나이의 두 배 가까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엄마의 나이만큼 수없이 아파했을 그 막연한 순간들이 새삼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손끝이 저리다는 엄마의 손처럼, 굳은 살이 잔뜩 배겨 울퉁불퉁해졌을 엄마의 마음을 직접 마주했을 때, 나는 딸로서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고 엄마의 친구로서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동안, 우리 엄마 얼마나 외로웠을까. 다 큰 아들, 딸, 그리고 남편은 매일 저녁 직장동료들과 술 마시고, 주말엔 친구들과 만나 놀겠다고 나가 노느라, 매일 밤 혼자 집을 지켜야 했을 엄마의 그 모든 순간들은 채 나오지도 못하고 수없이 삼켜졌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아무리 상처받고 아파했어도 결코 무뎌지거나 덤덤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평생의 꼭 두배를 살아온 우리 엄마도,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무던히도 흔들리고 상처받으며 아프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든 사랑이 예쁘고 아픈 만큼, 그 모든 상처도 결코 작지 않았고 가볍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해서 많이 경험했다고 해서, 덜 다치거나 덜 아픈 건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보면서, 나를 돌아봤다. 



내가 엄마의 어릴 적 모습에서 내 얼굴을 찾듯이, 나를 보며 엄마는 엄마의 서른을 떠올릴까. 나는 내 얼굴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예쁘게 살고싶다. 엄마가 나를 보며 나도 저런 모습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게 예쁘게 나이들어가고 싶다. 

 -조선진, <반짝반짝 나의 서른> 중에서



결국 엄마 혼자 견뎌야 할 문제였고, 엄마가 아닌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옆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엄마가 힘들 때 옆에서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작은 힘이 되길 조용히 바랄 뿐이었다. 



올해 엄마와 다녀온 오사카 여행. 다행히, 엄마에게 예쁜 일본의 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엄마, 우리 힘내자. 너무 일희일비하며 아둥바둥 힘들게 살지말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며, 그렇게 살자 우리.



엄마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며, 나는 엄마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엄마가 날 키우면서 좋은 것,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었듯, 이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고생 많았던 우리 엄마가, 이젠 예쁜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며 다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처럼, 그리고 내 마음처럼, 서로의 마음처럼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만 보면서, 예쁘게.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 한 선택에 책임지는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