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들이 모여 자존감을 이룬다
남자에게만 의지하는 여자가 싫다고 말해왔으면서,
정작 내가 남편에게 한없이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정보에 빠삭한 남편이 일정도 숙소 예약도 척척 알아서 하기에,
여행 일정만큼은 남편이 하자는 대로 잘 따라다녔다.
하지만 나는 여행 이외에도 많은 부분을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남편이 먹고싶어하는 메뉴를 먹고, 보고싶다는 걸 보러가고, 하고싶다는 걸 했다.
나도 모르게 선택권을 남편에게 줬고, 자연히 여행의 주도권도 남편이 갖고 있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남편에게 맞춘 여행이었다.
그러고보니 문득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모호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호불호가 크게 없는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도 친구가 좋아하는 메뉴 위주로 밥을 먹고,
내가 먼저 리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맛없는 것도 잘 먹는 나는 사실 왠만한 음식점은 다 맛있게 먹는 편이라,
친구의 입맛에도 맛있다는 음식점을 추천해주기 난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추천을 못했다기보다는
'에이, 먹어보니 별로네'라는 친구의 혹평을 들을까봐 두려웠던 거다.
한마디로 '책임'지기 싫었던 거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구하는건
자기 삶의 통제권을 내던지는 일이다.
이틀 전 김수현 님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삶에서 자신이 내는 선택이 모여 자존감을 이룬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결과까지 책임질 때 얻어진다.
그런데 스스로 선택을 내리지 못하면 자기 신뢰를 쌓을 경험은 빈약해지고,
빈약한 자기신뢰로는 책임질 자신이 생기기 어렵다."
나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책임지는 걸 참 어려워한다.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가 나쁘면 좌절하고 후회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나약했던 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도전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지않고 결과만 봐서가 아닐까.
오늘부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이 끌리는 선택을 해야겠다.
그 작은 선택과 성공 경험들이 모여 나의 자존감을 이루고, 자신감을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선택하고 결정내리는 것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오빠를 보면서, 나도 배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