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린 Nov 11. 2018

나는 한편으로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

막상 혼자일 땐 외로우면서

그러고보면 우리 남편은 참 나 데리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 어떤 남자인들 주말마다 혹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카페가서 책읽고 혼자 끄적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랑 평생 살고 싶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함께 있는 게 아니라 혼자만 있고 싶어하는가 하면 또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밥먹고 함께 사는 지금의 결혼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철저히 '나'이고자 한다. 9시부터 6시까지 수많은 직장 동료들과 부딪치고 북적대는 평일, 그리고 집에서는 남편과 노닥거리며 함께 밥차려 먹다보면, 어느새 '나'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도 나는 일주일에 한시간이라도 철저히 나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남편보다 일찍 집에 퇴근한 집에선, 밀린 집안일에 내일 아침메뉴, 내일 하루를 준비하느라 실제 혼자 있음에도 나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한 건, 철저한 혼자의 시간을 갖자는 나와의 약속. 


여행중엔 가진 게 시간 뿐이어서 숱하게 가졌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와 속삭였고 비밀을 털어놓으며 비밀 펜팔 친구를 가진 것 같은 든든함을 느꼈다. 현실에 돌아왔다지만, 나는 그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못한다. 여행중 썼던 몰스킨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내 머릿속에 떠도는 키워드들을 하나씩 적어나간다. 아니면 정신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개운해짐을 느낀다.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면 단연 이 다이어리라고 말할 만큼, 내겐 카메라 사진들보다 소중한 물건이다. (여행중 스위스 어느 숙소에 다이어리를 놓고 온적이 있어, 독일에서 다시 돌아가 가져온 적도 있다. 그나마 자동차로 2시간이었기에 망정이지, 허허허)



그러고보면 나는 항상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시간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걸.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난 일주일, 화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평소라면 5시 55분에 알람을 두 번이나 끄고 나서도 눈도 못 뜨고 밥하고 국을 데우기 바빴지만, 전날 일기를 쓰고 잔 이튿날 아침이면 조금 더 개운하게 아침 5시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남편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 보이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배경 삼아 하루를 시작하면, 수면 시간이 줄었는데도 회사에서도 기운이 났다. 그만큼 아침 시간이 오늘 하루의 활력을 좌우한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다음주도 기대해본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다짐은 스스로를 실망시킬 뿐이니, 나는 다만 나를 믿어볼 뿐이다. 내일 아침도 일어날 수 있음 일어나보자, 다만 너무 피곤해서 하루를 망칠 것 같으면 조금 더 자도 좋아. 이렇게. 합리화일지 몰라도, 내 바이오리듬을 무시한 채 강행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아침 시간이 루틴이 될 수 있도록 천천히 기다려주기로 한다.


@Punta Arenas, Chile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