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악역을 맡을 것인가? 참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군대 생활하던 95년까지만 해도 우리 부대에는 식기조와 군화조라는 역할이 조직의 악습으로 남아 있었다. 주로 상병 들이 이 역할을 맡았는데 식기조는 식사 후 식판이 제대로 닦였는지 검사하고 군화조는 군화가 제대로 닦였는지 검사하는 일을 했다. 사회에서 보기엔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당시 군에선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군대에서는 그걸 맡은 상병들이 군기반장 역할을 하는 한마디로 조직의 악역이자 폐단이었다.
지난 달 페북에 리더의 악역에 대한 글을 공유하며 다음과 같은 글로 끝을 맺었다.
중간 관리자가 아랫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을 대변하는 상황이야 말로 가장 콩가루 조직이 될 수 있으며 가장 허약하고 무능한 조직이다.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역시나 위의 군대 문화를 언급하며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주말에 잠시 시간이 나는 틈을 타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리를 해 볼까 한다.
이 문제는 어떤 프레임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전개된다. 나 또한 PD 계열 운동권 출신인지라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조직을 착취와 투쟁의 관점에서 볼 경우 식기조와 군화조는 경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채찍이 된다. 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단 몇분이라도 더 일을 시키고 그를 통해 자신에게 더 많은 돈이 들어오게 하는 정통 맑스주의 방식의 관점이다.
하지만 이게 성립하려면 식기조와 군화조가 가르고 있는 상부와 하부 사이에 명확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설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 대비 얻을 게 없는 상황. 옛날 포스터 이미지처럼 자본가는 씨가를 꼬나물고 배를 두드리며 하늘에서 지폐가 쏟아지는데 노동자는 갈수록 가난해 지는 상황.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함께 노력해서 노력의 크기에 따라 성과를 나누는 한마디로 공동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 구조에서 식기조와 군화조는 정권의 개, 권력의 하수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복잡한데, 같은 조직이라도 어떤 프레임에서 보느냐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뉘기도 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보이기도 한다.
기원전 218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전략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원수 로마를 처부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저 앞에 알프스를 넘는 것 밖에 방법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장수들은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코끼리때를 몰고 넘는다고?
미친 짓이다. 우리 대장이 미친거다.
모두가 로마에 대한 적개심은 충만하다. 하지만 이건 아닌거다. 모두가 자살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때 당신, 한니발이라면 어떤 심정일까?
이기기 위해선 그 길 밖에 없다. 그건 확실하다.
참모 중 나이도 많고 경험이 있는 한명이 다른 방법도 있다고, 그렇게 유별나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본인의 판단력은 설득 당하지 않았다. (끼어 들어 첨언하자면 그는 인류 역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전략가였으며 이번 행동은 그것의 결정체였다는 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항상 내가 옳으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다시 돌아갈까? 나도 죽을 확률이 높은데...
한겨울에 코끼리떼와 10만명의 군사를 저 알프스에 몰아 넣는 건 내가 봐도 미친 짓이다.
바로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절대적이 된다.
리더가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참모는 오죽할까? 아마도 죽도록 올라가기 싫을꺼다.
그래서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종합해 '불가능'의 확률을 보고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리더를 이길 수 없다. 왜냐면 상대는 한니발,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와 판단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때 리더를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리더에게 비수를 꼽을 수 있는 논리란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동체라는 프레임에서 리더를 쏙 빼고 참모가 병사의 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병사는 참모의 편이 될 수 있다. 심지어는 폭동을 일으켜 한니발, 당신을 제거할 수도 있다. 한동안 왕 노릇도 할 수 있겠지.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자는 미친놈과, 알프스 꽃밭에서 농사나 지으며 부침개 부쳐 먹자는 착한 리더 중 누구를 고르겠는가?
아차차... 이때 잠시 목표를 망각했다. 우리 가족에게 네이팜탄을 퍼 부었던 미국, 아니 저 로마인들은 잠깐 까먹은거다. 하지만 그럴만도 하다. 알프스와 코끼리니까...
당신이 한니발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미친듯이 필요한 사람,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 자신의 영혼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사람이 있을거다.
"우리 애들 다 죽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아니다. 그건 가슴 아프지만 일부 이해는 한다.
"얘들아 우리 다 죽을 수도 있지만 장군이 하잔다. 어쩌겠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 봤자 산 중턱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해 보자. 믿어 보자. 저것만 넘으면 우리의 원수 로마놈들을 쳐 부술 수 있다. 낙오하는 놈은 한니발 장군이 죽이기 전에 내가 죽인다."라고 말하는 녀석. 그런 사람이라면 두 손 부여잡고 엉엉 울고라도 싶을 것이다.
인간이란 평범할수록, 가난할수록, 어릴수록, 모를수록, 약할수록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주저하고,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회피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며 목표 달성의 threshold를 넘지 못하고 언제나 좌절한다. 그래서 늘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리더가 철인이 되어 목표를 설정하면 리더와 군중의 경계에서 이해관계의 균형을 잡고 때로는 악역을 맡아 주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다.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여 있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에 편입되어 나의 이상과 무관한 목표를 항해 이용당하는 존재인가?
전자라면 우리 스스로 본인의 역할을 이해하고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악역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후자라면? 불평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댓글 놀이 하지 말고, 대안 없는 비난으로 분위기만 흐리지 말고, 무능한 아웃사이더로 조직의 불평분자로만 남지 말고.
아마도 식기조와 군화조는 초기 군사정권 시절, 위생상태 불량으로 식중독이 만연하고, 군대가 정치를 하므로 군인의 외모 자체가 중요하게 생각되던 시절, 아무리 말로 해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장교들이 내무반 전체에 얼차레를 주던 시절. 그걸 해결하기 위해 병장들이 상병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며 시작된 듯 하다.
조직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은 병장이 조직의 우두머리라 착각하곤 한다. 군대에서 조직을 바라본 스케일이 내무반을 넘어서지 못한거다. 하지만 병장은 그저 내무반의 대표일 뿐이다. 마치 스타트업 대표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한낮 작은 조직의 대표에 불과하듯 말이다.
군화조와 식기조는 내가 병장이던 시절 구타 사고로 몇명이 영창에 가면서 사라졌다.
그 후 내무반에는 일종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등병때는 없었던 문제들, 안전사고, 하극상, 청결상태 문제로 병장들이 끌려가 혼이나는 일들을 보며 좌파이던 내가 아랫녀석들 몇놈 창고에 끌고 가 머리를 박게 하는, 한마디로 혼란의 시기를 경험했다.
절대 오해하질 않길 바란다.
군대의 식기조 군화조 문화는 구태의 매너리즘이었으며 당시에 불필요한 악습이었다.
구타는 나쁘다. 독재도 나쁘다. 악역을 한부로 남용하면 분명히 문제가 된다.
그래서 목숨 걸고 테러방지법도 막아야 하는거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건...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
모든 것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한마디로 생각보다 세상이 복잡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