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부연설명
지난 글 "조직에서 악역이 필요한 이유" https://brunch.co.kr/@yper/5 를 성급하게 마무리한 값을 톡톡히 치렀습니다.
사실 페북에서 <리더를 위한 세계 최고의 EQ 수업>의 한페이지를 지인이 공유해 주셨는데 공감하는 바가 있어 글을 쓴다는 게 하필 처가집에서 애들 보며 쫒기듯이 글을 쓴 나머지 마무리를 후루룩 해 버렸는데, 민감한 부분을 너무 단순하게 기술해 버린 덕분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
김태길씨의 수필 <글을 쓴다는 것>에서 "글을 쓸 때는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그래도 뭐... 사업도 린하게 시작했는데, 글도 린하게 써 볼까 합니다. 잘못된 내용은 보강하고 수정해 가면서요.
제가 결정의 순간에 잘못된 타이핑을 한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해 보자. 믿어 보자. 저것만 넘으면 우리의 원수 로마놈들을 쳐 부술 수 있다. 낙오하는 놈은 한니발 장군이 죽이기 전에 내가 죽인다."라고 말하는 녀석. 그런 사람이라면 두 손 부여잡고 엉엉 울고라도 싶을 것이다.
여기서 "낙오하는 사람은 한니발 장군이 죽이기 전에 내가 죽인다"를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의미 전달을 쉽게 하려고 그냥 넣어버렸습니다.
왜냐면, 그 앞 부분에선 중간 관리자가 악역을 맡아야 한다고 했는데, 저 말 '죽인다'를 넣으면 악역처럼 보이지만 저 말을 빼면 소통을 잘하는 중간 관리자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죽인다'라고 말하건 말하지 않건 그건 그저 말과 소통의 방법일 뿐이지 결과적으로는 악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많은 분들이 비판하듯이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제가 반대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레임에서 보느냐에 따라 소통과 무관하게 악역이 될 수도 선역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더 쉽게 이해하려면 위의 원문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는 중간 관리자가 선역이냐 악역이냐를 판단해 보면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저 말로 한니발을 굴복시킨 참모가 있었다면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가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참모가 이미 있어서 한니발이 먼저 죽였을 수도 있지만... 리더 입장에서 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변함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를 배신자, 반란자 등으로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는 그 사람이야 말로 평화주이자이면서 단기적이지만 수만명의 생명을 살린 영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 한니발을 위해 충성하는 중간 관리자가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파이팅을 심어주고 잘 설득해서 올라라게 한들 그 또한 한 가정의 아버지,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절대 한니발이 선이고 반항하는 참모가 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프레임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리더가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그 갈래에서 수 많은 고민을 하고 때론 대중이 원치 않는 의사결정도 해야하는 상황에 빠지는 상황이 있다는 겁니다.
이때 대중이 원치 않는 일이지만 그걸 거역하고 끌고 가야한다면 그게 곧 악이 될 수 있고, 이때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의견입니다. 중간 관리자가 대중의 편에 서는 순간 리더는 고립되고 힘을 잃게 됩니다.
소통을 잘하면 된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만 리더도 인간이기에 조직이 커질수록, 한계 상황에 봉착할수록 사실 그렇게 해야 하지만 능력에 부쳐 소통하지 못하고 가야 할 때도 많습니다. 물론 그 또한 리더의 역량이기에 모든 비판은 리더가 받아야 하는 건 맞고요.
상황을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보기엔 시대가 달라졌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소통을 잘 하건 안하건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개인의 자율과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있고 일부 일리 있는 말이죠.
저는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삶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조직 운영 원리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역학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이 부분은 따로 써야 할 정도로 긴 글이 될테니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은 저 같은 글을 읽을 때 "너는 누구 편이냐?", "그래서 테러방지법 찬성이야 반대야?"라는 관점에서 보시는데, 그러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저 많은 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반, 저희 서비스에 대한 간접적인 노출 반의 목적으로 저의 지식 공유를 하는 것 뿐입니다.
누구 편이냐고 설정하고 글을 읽는 순간 생각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그저 이런 생각도 있고 그런 논리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읽고 필요하다면 토론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쁜 와중에 적극적인 의견으로 추가 글을 쓸 수 있게 동기부여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