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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구 YPER 대표 Apr 10. 2017

스타트업 CEO의 역할

Death Valley 생존 일지 두번째 

스타트업은 식량이 떨어져 죽기 전에 Death Valley를 탈출하는 게 중요 미션이라는 점에서 일반 중소기업과 다릅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달성해야 할 미션이 있고 대부분이 지켜야 할 Build Order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직 Death Valley를 탐험하고 있는 탐험가로서 후발대를 위한 표시를 이렇게 남깁니다. 오늘은 대표가 명심해야할 CEO의 역할에 대해 작성해 봤습니다.

 


크게 보면 CEO의 역할은 뻔합니다.

회사가 돈을 잘 벌게 해 주는 것이죠.


그런데 회사의 라이프사이클을 세분화해서 보면, 이게 꼭 그렇지 많은 않을 수 있습니다.


Death Valley에 있는 스타트업을 생각해 보죠. Death Valley에 있다는 말은 아직 BEP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고 적자는 누적되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얼마 후에 파산하게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직관적인 CEO의 역할은 첫째, 생명 연장을 위해 투자금을 받아 오는 것이고 둘째, 적자 폭을 최소화하여 촛불이 타 들어 가는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저 또한 와이퍼를 생존 시키기 위해 두가지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아직 살아 있으니 나름 잘 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 두가지는 본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죽어가는 생명에 인공 호흡기 달고 심장충격 해 주는 상황일 뿐... 와이퍼는 특히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세차 한 건 할 때마다 적자가 1만원 이상 발생하는, 고객만 이득을 보는 서비스이기에, 아무리 투자금을 끌어 와도 빠르게 촛불이 타 들어가는 걸 늦추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투자와 수익에만 집중하면 더욱 중요한 걸 놓치게 됩니다.


보다 본질적인 CEO의 미션을 깨달았을 때, 저는 7살짜리 우리 딸의 자연관찰 책을 보며 커다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권력이 분산된 조직 구조로 인해 일원화된 사업 추진이 어렵고 끊임 없이 잡음이 발생하던 상황을 자의반타의반 정리한 후였습니다(사실 제가 원해서 된 건 거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죠). 저 혼자 모든 의사 결정과 비대해진 인력 운영, 방향을 벗어난 오프라인 상품 관리까지 다 혼자의 힘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였기에 몸이 피곤한 건 물론이고 그 복잡성이 내 능력을 벗어난 수준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해 있었죠. 죽음의 계곡에서 길을 잃은 겁니다.

그때 계곡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제가 한 행동이 있었는데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며 의지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조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조직의 비전에 공감하는 멤버가 있었는데, 좋게 꾸며 말하자면 내가 힘든 걸 그대로 표현하면서 상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하나씩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내 스스로가 의지하며 갔었죠. 그런데 신기하게 상황이 조금씩 변해 갔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던 복잡도가 조금씩 감소 하더라는 거죠. 여기서 직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핵심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는게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스타트업 초기 CEO의 역할은 우리 딸 자연관찰 책에 나오는 여왕개미 제제의 역할과 같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볼 테니 젊은 스타트업 CEO 지망생 분들은 잘 들어 주세요.

여왕개미는 평생에 단 한번 짝짓기를 위한 비행을 합니다. 아이디어가 잉태되는 창업의 순간이죠. 그리곤 땅에 내려와 날개를 떼어 내고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CEO의 삽질이 시작되는 겁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다 해야 합니다. 여왕개미도 처음엔 스스로 땅을 파고 첫번째 알을 낳은 후 그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애벌레와 번데기를 돌보는 것까지 모두 일개미와 똑 같이 일 한다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첫번째 알이 깨어 난 이후부터 단계적으로 일개미들에게 먹이를 구하는 일과 새끼를 돌보는 일을 하나씩 맡기며 마지막에 자신은 오직 알을 낳는 일에 전념하는 겁니다. 

이걸 스타트업 대표의 build order에 대입시켜 놓고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업 초기 핵심 업무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추진한다. 둘째 나와 유전자가 같은 직원을 뽑고 한동안 협업하며 나와 같은 유전자임을 확인하고 확인 시킨다. 셋째 해당 업무에 대한 미션과 책임 범위를 정확히 하여 본격적으로 권한을 위임한다. 넷째 조직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상태가 되면 대표는 더욱 중요한 미션, 더 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아이디어, 주요 의사 결정에 집중한다. 

물론 김범수 의장처럼 이미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창업 초기에 이미 충성스러운 일개미가 포진하고 있을 테니 2단계 까진 걱정 없겠지만, 완전 초보 창업가에겐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일 겁니다.


권한의 위임이라는 것.

모두가 아주 쉽게 말하는 이 일이 초기 스타트업 CEO의 핵심 과업이라 감히 말씀 드립니다. 사업이라는 건 겉에서 보는 것 보다 복잡도가 미칠 정도로 높습니다. 절대 모든 걸 혼자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Death Valley에 들어 서는 순간부터 에너지가 소모되기 전까지 병렬의 빌드오더를 수행해 가며 가장 집중해야 할 부분이 구성원에게 내 유전자가 스며들도록 만들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Death Valley 중간 지점에 와 있을 때 내 유전자를 물려 받은 일개미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식량이 떨어지기 이전에 무너지는 돌 더미에 깔려 죽게 될 겁니다.


그래서 CEO는 소통의 능력이 중요하고 타인으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고슴도치 같은 사람들로 부터 상처를 받아도 감내해야 하는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조직에선 말단 직원도 특정 사안에 있어선 대표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권투 선수보다 TV를 보는 관중이 더 권투를 잘해 보이듯 대표는 초짜 직원들에게도 비굴하게 평가받고 비판 받습니다. 조직이 너무나 허약하고 불안정하기에 나와 유전자가 다르다고 GE의 젝웰치처럼 직원을 과감하게 자를 수도 없죠. 이런 과정을 감내하면서도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사업이 CEO에게 주는 가장 혹독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통해 조직을 안정적으로 세팅하는 것이야 말로 CEO의 미션 중 가장 중요한 미션일 겁니다.


제대로 된 권한의 위임이 가능하기 위해서 몇가지 조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사업 아이템 만으로도 지속적인 비전이 보여야 하고 그것이 누군가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비전 없는 일을 할 때, 직원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아무리 치켜 세우며 등 떠밀어도 몇 걸음 이상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부에서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다면 사업에 비전이 없는 것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면 신기하게도 저기 구석에서 누군가 나타나 나를 도와 줄 확률이 높습니다.

두번째 조건은 권한의 위임을 하기 위해서 "내 새끼는 내가 낳는다"라는 말로 설명될 것 같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권한을 위임한다고 조직이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게 이 부분의 아이러니입니다. 권한의 위임 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일하는 방식, 소통하는 코드, 이해 관계의 일치 등에서 나와 유전자가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직을 만들면 처음엔 여왕개미처럼 모든 일을 자기가 직접 주도하고 하나하나 간섭하며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즉, 오히려 권한의 위임을 하지 말고 자신의 통제 하에 진행되도록 하되, 내 밑에서 내 방식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따르는 게 확실한 사람에게 권한을 하나씩 위임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한테나 권한을 위임하는 게 아니라 내 새끼한테 해야 이 놈이 내 애벌레를 물고 엉뚱한 개미집으로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네이버 다니는 동료들로부터 그 조직의 정치적인 쟁투와 리더 중심의 조직 개편이 많은 상황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실력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이 원리를 저절로 터득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창업을 하려다 보면 내 능력이 부족해 처음부터 동업자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새끼가 아닌 나와 동등한 레벨의 동업자와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창업에서 상당히 큰 핸디캡을 갖고 출발하는 겁니다. 권력의 집중과 리더에게 충성하는 조직 문화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성공하는 조직 운영의 진리이기 때문이죠. 설령 불가피한 상황이라도 상대방이 나와 아주 오랫동안 지내며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아는 절친이 아닌 경우 실패한 관계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회사라는 배가 똑바로 가기 위해선 키가 하나여야 만 하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여러 개일 경우 그 머리 간의 소통, 이해, 배려의 정도는 일반적인 관계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요합니다.


이 글이 정말 도움이 되려면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한데, 한 편에 모두 쓰기엔 너무 지루할 것 같아 조금씩 나누어 쓰겠습니다.


누군가의 열정을 불러 일으킬 만큼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가지고 창업하기.

팀원들이 조직의 목표를 향해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그것을 위해 필요한 사업 스케일 관리, 사람 뽑기, 소통하기, 지분 관리, O2O 사업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노무적 이슈와 현장 관리 능력 등등... 스타트업, 특히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부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짧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고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대화를 통해 깊이 공감한 내용을 조금씩 써 보겠습니다.

물론 제 글이 진리는 아닙니다. 아직도 death valley에 있는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들어서는 안되겠죠. 저도 곧 죽을 수 있는데 감이 이 길로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 동안의 시행착오 케이스를 한가지라도 전달함으로써 후발대의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는 팁 정도라 생각하시고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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