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해마다 경주를 가고 있다. 경주의 명소를 대부분 여러 차례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경주에서 가까운 울산과 포항도 함께 다녀왔다. 울산은 남편이 장기출장을 가 있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내서 우리에게는 항상 힐링이 되고 좋은 추억이 많이 쌓인 장소다. 이번에도 다시 가고 싶은 추억의 장소들에 또 다녀왔다. 금강산 삼계탕, 장생포 고래박물관, 모노레일, 고래문화마을, 웰리키즈랜드, 고래빵 모두 처음은 아니지만 다시 먹고 다시 가보아도 좋은 곳이었다.
포항 호미곶은 처음 가보았다. 등대박물관도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느린 우체통에서 엽서를 썼는데 12월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12월이면 올해의 마지막을 남기고 있는 시간이라 또 어떤 모습으로 엽서를 받게 될지 기대가 된다.
경주에서는 다른 곳도 좋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황리단길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아이들에게는 간식도 많고 예쁜 액세서리나 장난감이 많은 그곳이 행복 백화점 같은 느낌인가 보다. 코로나에는 사람도 없고 쓸쓸했던 공간이 다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먹고 싶었던 교리김밥과 함양집도 다녀오고 경주빵 보리빵 십원빵 고래빵 구운 찰빵까지 빵이란 빵은 열심히 다 먹고 왔다. 역시 여행은 마음도 살찌우지만 몸도 살찌운다.
이리 좋은 시간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좋은 시간이라 끝이 더욱 아쉽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둘째아이는 아쉬운 마음이 행복함을 넘어서며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마지막 오는 날에는 자꾸만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렸을 적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다. 가끔 친척 집에 방문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아쉽고 싫었다. 헤어짐도 익숙하지 않았고 일상으로의 복귀도 반갑지 않았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잘 지내다 보면 또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했지만 어린 나는 그 순간이 싫었다. 종업식도 졸업식도 이사를 할 때도 사람과 물건과 이별이라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힘들었다. 어른들의 그 어떤 말과 눈빛도 위로가 되지는 못했고, 물렁물렁했던 나의 마음은 아무리 같은 상황을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아 그때마다 눈물이 났다.
여행의 끝이 아쉽기만 한 둘째에게, 나는 어릴 적 헤어짐에 익숙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에게 어른들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하게 되었다. ‘여행의 끝이 있어야 또 다른 여행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는 거라고… 너의 일상으로 돌아와 또 열심히 지내다 보면 또 다른 기쁜 일들이 기다릴 거라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의 마음도 알 것 같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쩌면 둘째도 ‘널 다 이해해’라는 나의 눈빛에서 이해하는 마음을 전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 역시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 어른이 되고 키가 자란 만큼 마음도 자랐고 발바닥이 단단해진 만큼 마음도 단단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헤어짐에 익숙해지지 못한 것 같다. 첫 학교 발령에 함께했던 동료 선생님들과의 헤어짐이 생각보다 많이 슬프다.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다음번 학교에서는 익숙해지겠지…’ 생각하니 또 슬프다. 그런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단단해지고 싶지만 또 단단함이 익숙함을 만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이다.
아이를 보니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아 아쉽고 슬픈 시간도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랑한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여행의 끝도 충분히 아쉬워하며 헤어지고 또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면 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맺은 인연과의 헤어짐도 충분히 아쉬워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면 된다. 여행만큼이나 소중한 일상을 느끼고, 아쉬운 헤어짐만큼이나 반가운 만남을 기대하며… 또다시 행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