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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Dec 29. 2023

Nell’s room(넬스룸) 2023

시간을 향하는, 시간에 있는, 시간을 그리는 마음

기다리는 시간을 향하는 마음


 여행, 연휴, 특별한 기념일이나 공연…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렘이고 즐거움이다. 어쩌면 그 시간에 놓여있는 마음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무렵부터 얼마 남지 않은 한 해가 몹시나 아쉽고 떨어진 낙엽들이 쓸리는 소리에 내 마음도 함께 쓸려버리며 추위에 웅크린 채 그렇게 10월 11월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12월 크리스마스 연휴, 넬스룸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넬스룸은 2012년부터(코로나 기간 2년을 제외하고) 매년 연말 크리스마스 3일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공연한다. 넬은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도 없고 활동을 많이 하는 밴드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넬’이라고 하면 <기억을 걷는 시간>이라는 노래의 ‘아직도~’라는 첫 소절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카페 옆자리에 앉아도 그냥 스쳐 지나갈 정도로 얼굴도 잘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넬이라는 밴드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꾸준히 앨범을 내고 공연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넬 마니아, 골수팬이 많아서 생각보다 치열한 티켓팅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나 맘에 드는 자리를 예매했다.

 

 넬 콘서트를 매년 가면서 주차로 이리 고생을 해본 건 또 처음이었다. 올해 잠실 주 경기장 공사로 주차장 3개를 이용을 못하는 데다가 23일 토요일 올림픽공원 근처에서만 5개의 콘서트가 있었다. 아이들을 맡기고 열심히 이동하여 한 시간 전에 도착했으나 주차 때문에 주변 도로가 꽉꽉 막힌 상황이었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주변 상가 건물에 비싼 주차비를 내고 3시간을 주차하기로 했다. 주차에 시간을 상당히 허비해서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입에 와구와구 넣으며 공연장에 도착했고 정신없이 자리를 찾아 우리의 자리에 앉았다. (2분 후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보니 우리 자리가 아니어서 다시 옮겨 안기는 했지만...)


기다리던 시간에 있는 마음


 폴로 매장이나 교보문고를 들어가면 그 공간만의 향기가 있다. 넬스룸 역시 그렇다. 공연장에 조향을 하기 때문에 입장하면 은은한 장미향이 가득하고 익숙한 그 향기가 이미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반겨주는 느낌이 든다.


 이번 넬스룸은 내가 넬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섬'이라는 곡 어쿠스틱 버전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와!!'라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을 모으고 공연 관람을 시작했다.

 꽤나 조그마한 어쩜 한심할 정도로 볼 품 없는 그저 그런 누추한~ (중략) 당신은 내게 물었죠 지금 무슨 생각해~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단 생각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완벽해~

그렇게 현실감을 잃은 넬의 멋진 공연은 시작되었다.


공연 셋 리스트

섬 /Afterglow /One time bestseller /Go/
시간의 지평선/지구가 태양을 네 번/백야/치유/Separation anxiety/Dystopian’s Eutopia/
Crack the code/Moon Shower/Hollow/Fantasy/Fisheye Lens/환생의 밤/Star shell/기생충/Movie/낙엽의 비/미아/기억을 걷는 시간
12 Seconds


 넬의 보컬 김종완은 멘트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그의 멘트에 웃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시크한 유머와 위트의 소유자다. 저렇게 딱 필요한 말만 하면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유머러스함을… 나도 정말 갖고 싶다. 곡이 끝날 때마다 날려주는 시크하다 못해 정말 감사한 거 맞나 할 정도의 거만한 그 만의 “땡큐!!”는 이제 익숙해져서 없으면 허전한 마음이 든다.


 화려한 조명과, 은은한 조향과, 멋진 배경 영상과 무엇보다 라이브로 듣는 기가 막힌 밴드 사운드와 환상적인 김종완의 목소리는 넬 공연만이 갖는 매력이다. 그 현장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이 안타깝고 느끼고 있지만 다 느끼지 못할까 담아내고 있지만 다 담아내지 못할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인상 깊었던 곡… 물론 너무 많지만 기억에 남는 곡들을 몇 곡 남겨보자면…

 <GO> 겨울에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고, 가사와 목소리와 영상과 사운드와 모든 게 완벽했던 곡이었다. 콘서트에서 오랜만에 부른 <치유>도 너무 좋았고, <낙엽의 비>와 <미아>의 어쿠스틱버전도 너무 좋았다. <백야><지구가 태양을 네 번>도 좋았고 <Fisheye Lens> <Star shell>도 좋았다. 이번 앨범 곡들은 첫 라이브로 들으니 더더 좋았다. 쓰다 보면 다 좋았다고 써야 할 것 같아서 이만 써야겠다.


 지난번 글에 넬 콘서트를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라던!! 박치가 아님을 증명하고 오겠다던 새 앨범의 곡들에서 나는 박수도 떼창도 걱정했던 것보다 잘 해냈다.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X맨 박치는 내 옆에 있었는데… 내가 박수를 치고 깔끔하게 끝이 났는데도 자꾸 내 짝꿍은 한 번씩 더 박수를 쳤다. 내가 연습할 것이 아니라 함께 연습했어야 했나 보다.

 

 예정 공연시간 2시간과 앵콜곡까지 30분 정도가 지나 2시간 30분을 꽉 채운 공연이 끝났다.

거짓말… 너무 짧게 느껴졌고 너무 아쉬웠다.


기다렸던 시간을 그리는 마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넬 노래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기걷시>나 <stay> 같은 대중적인 넬의 노래를 제외하고 넬의 노래의 대부분을 처음 들었을 때 시끄러운 노래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가사가 좋은 노래가 많다고 생각했었고 계속 듣다 보니 사운드도 좋고 마음에 와닿고 위로가 되고 곡들이 많다고 느꼈다.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한 번에 확 좋아지거나 빠진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그들에게, 그들의 노래에 스며들었고, 그래서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넬이 공연을 마무리할 때쯤 한 명씩 인사 멘트를 했다. 크리스마스를 매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만큼 함께하자는 말… 나도 그들과 같다.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를 매년 선물해 주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영원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영원에 가까운 시간만큼..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4주년을 지나온 넬이지만 김종완은 아직도 여전히 음악이 너무 좋고, 음악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음이 가장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콘서트를 하는 그들도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고 행복하다고…

 그 말을 들으며 브런치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 이유도 목적도 모양도 저마다 다르지만, 글이라는 것 자체가 좋고 글 쓰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글을 읽어주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브런치는… 글이 있는 공연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공연을 함께한 넬과 나의 짝꿍… 그리고 행복한 글쓰기를 함께하는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기다리는 시간을 향하고
그 시간에 있고
그 시간을 그리는 마음이 반복되며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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