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가 시러요
대학 입학 전까지, 정확히 음주 후 말춤을 춰보기 전까지 내가 허리가 긴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춤을 유독 잘 추는 선배가 내가 자기처럼 허리가 길어서 그런다고 인정해 주기 전까지...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건 다 그대로 태어나도 되지만, 말춤 잘 춰지는 긴 허리 대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긴 다리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바꿔보고 싶은 하나의 신체 부위가 더 생겼다. 바로 콧구멍이다.
정확히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TV에 나온 연예인이 코의 구조적인 문제로 수술을 했는데 수술 전 숨을 쉬었을 때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의 양이 수술 후 확연히 달라졌다면서 숨쉬기가 너무 편해졌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코로 한 번에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는 공기의 양이 다르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면서... 나 역시 굉장히 몹시 충격적이었다.
늘 비염에 알러지를 달고 사는 내 코는 샤워 후 적어도 10번이 넘는 재채기를 한 뒤 코를 킁킁 풀고 나면 코안이 부어오르며 불편해진다. 자다가도 코가 불편해서 깨는 경우도 많고 콧구멍이 간질간질 신호를 보낼 때면 코를 깊숙한 곳까지 긁어주는 기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알러지가 없는 청정 콧구멍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모든 신체 부위가 역지사지가 되지 않듯이.. 콧구멍 역시 그렇다. 다른 이의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의 양을.. 나는 절대 알지도 느껴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공기의 통로는 아주 엄격하고 작게만 허용하는 내 코는... 냄새에 있어서는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하게 발달해 있다. 냄새만으로 우리 집 저녁 메뉴는 물론 다른 집의 저녁 메뉴까지 알아챌 수 있고, 냄새만 맡아도 음식의 신선도를 가늠할 수 있고, 설거지를 해 놓은 냄비나 프라이팬의 냄새만으로도 무슨 요리를 했는지도 잘 맞춘다. 학창 시절 체육복 냄새를 맡고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수업하러 들어가는 반마다 그 반의 냄새가 있어서 눈감고 들어가도 몇 반인지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냄새에 민감한... 일명 개코는 내가 조향사를 했으면 모를까.. 주위 사람들의 놀라움과 감탄사를 유발하는 것 외에는 딱히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없다.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맡지 못해도 되는 냄새까지 스멀스멀 올라와서 불쾌감이 올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개코 덕분일까? 어려서부터 둘째 아이에게 엄마는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라 머리 감는 날을 냄새로 판별해줘야 한다. 머리를 감기 싫은 아이는 내 코에 머리를 들이밀며 저녁 샤워시간만 되면 장화 신은 고양이 얼굴을 하고 묻는다.
“엄마 냄새 나 안나? 안 감아도 될 거 같지 않아?”
문제는 날이 더워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임에도 자꾸 엄마한테 머리 냄새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엄마 머리 냄새 나 안나?”
“어차피 머리 감아야 되는데 왜 매번 묻는 거야?”
“그냥, 냄새가 나나 안 나나 궁금해서...”
알러지 없고 냄새 적당히 맡는 콧구멍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딸아... 너니까 맡아주기는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맡아야 되니???
코가 불편한 이 환절기가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 가을은 또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