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베풀 상냥과 친절은 남겨두자
<화에 대하여>를 들고 출근한
나에게 말했다.
“어머,
선생님이 이런 책 읽으시니 안 어울려요,
선생님도 화낼 줄 아세요?”
'가면을 아주 제대로 쓰고 사는 것 같다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인데.'
“남편이 추천해주더라고요.
제가 집에서 너무 화를 냈는지.”
“상냥 총량의 법칙이 있다더니,
학교에서 너무 다 소진하시는 거
아니 예요?”
“어머 그런 법칙이 있어요?”
지난 글에서 육아 총량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총량의 법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건
상냥 총량의 법칙에 대해 처음들은
그 날 이후였다.
총량의 법칙은 재미있게도
참 많은 곳에 적용됐다.
지랄 총량, 고통 총량,
친절 총량, 불행과 행복 총량.
집에 들어가서
학교에 다녀온 채니의 가방을 봤는데,
제출하지 않은 숙제가 가방에
그대로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한 달 동안 집에서 해가는 과제였고,
한 50장은 되는 과제 묶음을 챙겨주느라
전날 적잖게 고생을 했다.
“채니야, 왜 숙제 안 냈어?
다른 친구들도 안 냈어?”
“아니, 나랑 다른 친구 2명 안 냈어.”
내 얼굴은 이미 웃음기 쫙 뺀
다큐 느낌.
“왜 안 냈는데?”
“안 푼 문제가 있어서.”
맙소사,
50장 중에 안 푼 문제가 있었다고
그걸 지금 안 내고 온 것이 실화인가?
너무너무 화가 났다.
앵그리 맘으로 변신하는데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거 하나 안 풀었다고
너만 숙제를 안내면 어떻게 해!!!!
엄마가 꼭 내라고 했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던 채니는
제 방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허하고, 휑하고, 짠하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후회가 밀려온다.
안 푼 문제가 보여서
차마 숙제를 다 했다고 낼 수 없었던
채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숙제를 오늘 내지 못했다고
그게 그리 큰 문제도 아니거늘,
나는 왜 그리도 크게 화가 났던 것인가.
상냥과 친절의 총량의 법칙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는 오늘도
내 아이에게 베풀
상냥과 친절조차 남기지 않고
다 탕진하고 돌아왔던 것인가.
다음 날 나는 채니를 안아주며 말했다.
“어제 채니가 열심히 다 완성한 숙제를
선생님께 안 내고 집에 다시 가지고 와서
너무 속상해서 화를 냈어.
채니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선생님께 보여드려야 하는데
숙제 하나도 안 한 아이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됐어.
그래도 화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
화내서 미안해.”
“괜찮아, 엄마.
나도 미안해.
다음 주에는 꼭 내고 올게.
근데 엄마,
<화에 대하여>는 다 읽었어?”
‘아빠가 혹시 시켰니?’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어제의 나를 돌이키며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걱정 마,
엄마가 <화에 대하여>
지금 열심히 읽고 있어.”
진부한 글은 싫지만,
육아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갖는
진부함으로
나 역시 글을 끝낼 수밖에 없다.
기승전 사랑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