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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Mar 22. 2023

엄마 교사의 두 얼굴

교사인 나 '그럴 수도 있지' & 엄마인 나 '내 아이는 그럴 수 없어'


교사는 집에서 어떤 부모일까?

많은 사람이 교사라면 집에서 본인의 아이를 양육할 때 당연히 지극히 모범적이고

올바른 교육으로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교사인 나와 엄마인 나는 정말 같은 모습일 수 있을까?




‘나는 나름 좋은 교사이다.’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착각이 정말 좋은 선생님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선생님에게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라며

친구들과의 문제, 가정에서의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마음을 열고 소통을 원하는 친구들이 있고

나는 그들에게 포근하고 열정적이고 친근한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내 앞에서 눈치를 보는 일이 별로 없고

나 또한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고서는

눈치를 주는 일이 거의 없다.


교사인 나는 잔소리와 당부의 중간 그 어디쯤이 명확하고

잔소리보다는 진심 어린 조언과 당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잘 다가가는 편이다.

아이들의 실수나 잘못은

‘그럴 수도 있지, 이를 통해 성장하는 거야.’

라고 말해주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나는,

이런 친절하고 너그러운 교사인 나는,

학교에 있는 제자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두 얼굴을 한 채

집에 있는 딸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는 참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마치 그 모습이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가면을 썼던 것처럼,

그러다 지쳐 돌아와 인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지 않아

본모습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가 알려준 대로

나도 좋은 엄마가 되어 보리라 마음먹고

최대한 밝고 경쾌하게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간다.     

 

“채니야, 주니야, 엄마 왔다!”

“.......”

“엄마 왔는데 인사 안 하니?

엄마가 인사는 예의의 기본이라서 인사 잘하라고 했지?

엄마 학교에서도 인사를 잘하는 친구들은

특히 더 예쁘다고...”

(래퍼처럼 쉬지 않고 열 마디 더 하고 나서야)


나도 나의 잔소리가 벌써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민망하여 잠깐 멈추고

아이들과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바로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캐묻는다.

'엄근진'은 엄마 근엄 진지의 약자로

대체해도 무방할 듯하다.   

   

“숙제는 했어?”“안 했으면 하고 놀아.”

“수학 단원평가는 잘 봤어?” “몇 점 받았어?,

다 맞은 친구도 있어?”


나의 눈을 피해 저녁 내내 눈치를 보다가

아빠가 오면 파리떼처럼 들러붙어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학교에서는 그렇게도 잘 되던

‘그럴 수도 있지.’ 정신이

왜 집에서는

‘그럴 수는 있어도, 내 아이는 그럴 수 없어.”로

바뀌는지...

친절한 선생님보다 다정한 엄마 되는 것이

백배 천배는 어려운 것 같다.     


학부모 상담에서 학부모님들께 되려 슬쩍 물어볼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뭐든 잘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도 잘하고 발표를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죠?      





교사인 나에게

스스로 믿음을 불어넣어 주듯,


엄마인 나에게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좋은 엄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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