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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Jun 07. 2023

은근슬쩍 동물농장

동물 비애호가 엄마와 동물 찐 애호가 삼인방

난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주 가끔 귀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 순간은 갓 태어난 새끼 동물을 볼 때 정도?

그것도 “귀엽다!” 한마디 외쳐줄 정도이지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너무 귀여워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의 감정은 평생에 느껴본 적이 없으므로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다.  

감정이 메마른 것인지 냉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머 태생이 그렇기도 하고, 살면서 불편한 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런 동물 비애호가가,

하필 동물이면 사족을 못쓰며 만지고 밥 주고 쫓아다니는 남편을 만나

뭐든 집에 들여 키우고 싶어 하며 최애 프로가 동물농장인 두 딸아이를 낳았으니

이 삼인은 애완동물에 있어서는 환상의 운명공동체이다.


동물을 저리 좋아하는 삼인을 위해 나 하나 양보하면 될 법 싶지만,

첫째, 난 동물이 너무 무섭다. 나보다 몸집도 훨씬 작고 그들이 나를 잡아먹을 리 만무하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무섭다.

둘째, 동물과 정드는 것도 두렵다.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생명에 책임을 지며 아끼고 돌보다가 정이 들고 그 정을 떼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 두렵다.

셋째, 적당히가 아닌 제대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책임이 무겁다. 아이를 보는 것 마냥 행복한 순간도 많겠지만,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버거울 것 같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애완동물을 내가 키우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혼자 볼일이 있거나, 혼자 집에서 쉬고 싶을 때 이 삼인의 운명공동체는 어김없이 집에는 없는, 앞으로도 없었으면 하는 애완동물을 찾아 나선다.



에피소드 1. 강아지

전화벨이 울린다.

직감적으로 불안하다.

“강아지 사가도 돼?”


강아지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 엄마 허락을 받으라며 미루다가 남편이 대표로 전화를 한 모양이다.

말문이 막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답한다.

“스으기만 해브아~~!!”

딸아이를 바꿔준다. 그것도 혀 짧은 막내를… 이번엔 애교작전인가 보다.

“엄마, 강아지 진짜 키우면 안 돼? 내가 밥도 주도 씻겨주고 응가도 치우 줄게.”

“주니야, 엄마는 강아지가 집에 있으면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 엄마 집에 못 가도 괜찮아?”

“…….”

협박을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다. 역시 엄마 껌딱지 우리 주니…


“엄마, 대신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야 돼~~!”

“응?? “


강아지는 안 샀지만 의문의 1패.
니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라.

에피소드 2. 토끼

토끼 같은 우리 토깽이들은 토끼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토끼를 집토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참 문제다.

아이들에 생각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나에게는 토끼를 기르는 일도 무섭고, 두렵고, 버거운 일이라 문제가 되어버렸다.


잠잠하다 싶으면 주기적으로 토끼를 키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얄밉게도 자꾸 들쑤시는 행동대장이 애들 아빠다.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또 예감이 좋지 않다.


“토끼가 진짜 너무 귀여워.(언제는 안 귀여웠고?) 얘는 진짜 귀여워.(설마 걔만 귀엽겠어?) 결제만 하면 되는데… 진짜 사가면 안 돼?”

“응, 안돼! 진짜 안돼!”


이쯤 되니 그냥 사 오지 않고 물어봐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토끼 사는데 실패한 아이들의 그늘진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 대체 아빠는 왜 너희들 머리를 망나니처럼 해놓고 다니는거니?


토끼 대신 토끼 장난감을 사들고 들어왔다.

“우리 집에 동물 인형 차고 넘치는데… 이제 진짜 그만 사면 안될까?”

“얘는 다른 토끼야.”, “맞아, 얘는 움직이기도 해.” “대신 다른 장난감 하나 버렸어.”

역시 삼인 운명공동체, 입만 살아있는 역공 신동들.  

토끼를 사 오지는 않았지만,
뭔가 또 찝찝하다.
의문의 1패가 계속된다.



에피소드 3. 거북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또 한 번 패했고, 우리는 두 마리의 거북이(진주와 꼬북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강아지와 토끼를 키우지 못하게 된 그들 삼인방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다 못해 환장의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엄마 거북이 키우고 싶어.”

“거북이를 왜 키워. 거북이가 귀여워?”

“응, 너무 귀여워.”, “얘들은 우리보다 먼저 죽을 리도 없어. 엄청 오래 산대. 키우게 해 줘.”

”어항 물 갈아주고 밥도 주고 해야 되는데 너희들이 그거 다 할 수 있어? 못하잖아. 그냥 이렇게 와서 구경하자.”

“내가 할게.”(진상진상……애들하고 대화하는데 왜 끼는 것이냐!!)


작은 거북이를 살 거란다. 큰 거북이와 비교를 해가며 다 커도 저 큰 거북이의 반도 안된단다. (음… 그래?)

거북이가 크면 언제든지 다시 거북이 파는 곳에 데려다주거나 강가에 놓아줄 수 있단다. (흠… 그래?)

묘하게 설득이 되고 있다.

밥도 주고 어항도 잘 갈아주고 알아서 잘 키운단다. 다른 동물들처럼 다가오거나 위협적이지 않단다.

결정적으로 거북이를 키우면 이제 강아지 토끼 고양이들을 키우겠다고 안 하겠단다.

에잇. 넘어갔다. 홀라당.

그래서 함께 살고 있다. 거북이들이랑.


밤에 자꾸 달가닥 달가닥, 와당탕당 소리가 나서 적응이 안 되더니 그것마저 이제 적응이 되었다.

자꾸만 밥을 줬는지 걱정이 된다. 여행 갈 때 잘 있는지 신경이 쓰인다. 어항을 제때 잘 갈아주고 있는지 살피게 된다.

거북이……
이로서 끝인 줄 알았건만…….



에피소드 4. 달팽이


환장의 삼인방이 거북이들의 동생을 만들어주었다.


그들의 변론은 이렇다.


캠핑을 갔는데 달팽이가 우리 텐트에 들어왔으니, 이 달팽이는 드넗고 푸르른 자연보다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며,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간택된 것이므로 이 달팽이의 주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나 뭐라나.


설득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 거북이도 키우는 판에 달팽이 집 하나 더 해준다고 머가 달라질라나 싶다.



동물 찐 애호가 삼인방 덕분에
은근슬쩍 동물농장이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집에
또 은근슬쩍 적응해가고 있는 동물 비애호가 엄마인 나는
걱정이다.
이러다가 그 옆에 또 무언가가 은근슬쩍 들어올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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