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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Jul 29.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해(解)' 이해하고 '방(放)' 놓아주다

올해 초 겨울 2월 이 책을 읽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장편소설


해방(解放)의 '해'자는 한자로 굉장히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분리하다, 풀다, 제거하다, 해석하다, 이해하다 등등

 이 책 제목에서의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사전적 의미보다 '이해하고 놓아주다'는 의미가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베스트셀러였고, 남편이 먼저 읽었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읽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도 언뜻 보기에 책의 크기가 작아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첫 느낌은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한 권의 책을 엮어내다니, 그러면서도 계속 궁금하게 하고 몰입하게 하다니, 그녀의 글빨이 경이로웠다. 외가댁이 전남 구례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인지 낯설지 않은 사투리도 정겨웠다. 그리고 아버지와 친하지 않은, 뭔가 어색하고 그래서 아는 게 별로 없는 딸의 상황과 마음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학창 시절부터 엄마와 이혼한 아빠와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생사여부도 모른 채 살다가 작년에 등본을 떼었다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그런 나의 상황을 소소하게 위로해 주는 것도 같았다.  


 이 책의 중반부를 읽을 때쯤엔 아버지와의 정다운 시절이 없는 나는, 점점 부러워지는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동질감이 이질감으로, 위로가 질투로 바뀌어 가고 있었고, ‘나는 이런 시절이 아예 없었던 걸까? 잊은 걸까? 혹은 지웠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후반부 책을 읽을 때에는 부러웠고 마음이 아렸다.  

작가의 그리운 어떤 날, 사무치게 그리운 어떤 날은 그저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산들거리는 어느 하루, 아버지가 페달을 밟는 자전거 뒤에 앉아 토라진 나에게 건네준 새콤한 홍옥 한입을 베어 물던 그런 날,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반딧불이 총총하기도 한 어느 날 무등을 타고 엄마를 기다리던 그런 날이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좋아 남기고 싶은 구절

P.228
나는 늘 그 이전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아버지가 나를 태우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던 어느 가을날이. 잔뜩 뿔이 난 낸 손에 햇살처럼 고운 홍옥 한알을 건네주었다. 이가 시리도록 새콤한 홍옥을 베어 물며 돌아오던 신작로에는 키 큰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산들거렸다.
또 그리운 어떤 날, 아버지 무등을 타고 어머니 마중 나가는 길, 때로는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반딧불이 총총하기도 했다.

"P.267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

P. 268  사램이 오죽하면 글 거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들을 걸 그랬다.


 주인공 아리의 아버지가 겪은 사상과 시대적 어려움에 대해서 느낀 바가 없지 않으나, 나의 독서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일생, 한 부모의 일생, 그리고 사랑과 미움으로 얽히고설켰지만 결국은 우리네의 삶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하고 먹먹해지는, 그런 책이었다. 

사무치도록 부러웠던 아버지와의 추억,
나에게 없는 그런 날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여 본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


잊지 말아야지, 나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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