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꿈은 아니었어
친구가 말했어요.
“아이들이 커가는 게 좋은데, 아이들이 커가는 게 걱정이야.”
친구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지요.
“아이들이 커가는 게 왜 걱정이야?”
“아이들이 크면서 내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건 좋은데, 내 도움이 필요 없게 되면 그땐 난 뭘 해야 할까?”
아주 쉽게 이렇게 대답해줬지요.
“널 위한 시간을 가져,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모임도 가고. 하고 싶었던 것들 많잖아.”
“그렇지, 그런데 취미생활 말고, 나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정말? 그럼 하면 되지.”
“근데, 자신이 없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이제 시작하려고 보니 마땅한 것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 또 흐지부지 되더라고, 넌 좋겠다. 네 일이 있잖아.”
“난 매일 직장 그만두는 꿈 꾸는데, 어떻게 하면 멋지게 그만둘 수 있을까.”
엄마도 엄마가 꿈은 아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공감능력 꽝’인 대화였던 것 같아요.
도전에 용기가 나지 않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거죠.
제가 일을 쉬고 있을 때 친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으니,
사람은 정말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배부른 소리 같았겠지만,
그땐 정말 직장을 그만두지 못해 다니고 있었거든요.
첫 번째 직업은 학원 강사였는데,
가르치는 일도 좋고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프리랜서가 좋았더랬지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되고 나니 새벽, 저녁 반 강의를 할 수 없게 되고 이런저런 제약이 많이 따르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레 강사직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첫 정규직이었어요.
둘째 주니를 낳고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일할 만한 곳이 눈에 띄었어요
(눈에 띄었다고 하기엔 솔직히 너무 열심히 찾긴 했지만).
일 년 정도는 육아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집안일과 육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나로서는 어떻게는 나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기도 했지요.
감사하게도 네 살 채니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직 기지도 못하는 한 살 주니를 받아주셨고,
그렇게 원하던 직장 맘이 되었지요.
하지만 직장은 겉보기와 달리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다닐수록 ‘내가 왜 지금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아이까지 맡기고 나온 결심이었기에 그만두는 것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았지요.
매일 아침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 일 나가지 말라고,
아프다고,
가지가지 이유로 맴찢 상황을 자아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왜 과감하게 그만두고 아이를 본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지만,
그때 그 당시의 나로서는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그만두는 용기를 내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맡기고 정신이 나간 채 일을 끝내고 귀가했던 날, 채니가 말했지요.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나 데리러 왔으면 좋겠어.
엄마 일 안 하면 안 돼?
나랑 놀이터도 많이 가고.”
대부분의 엄마는 엄마가 꿈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꿈보다 더 소중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지요.
엄마가 육아를 하는 것, 집안일을 하는 것, 직장 일을 하는 것 모두가 힘든 일이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엄마가 '아이 엄마로 사는 것' 자체가 아닌가 싶어요.
일을 하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저도,
아이를 돌보며 일을 꿈꾸는 친구도
모두가 아이 엄마이기에 힘들었던 것이니까요.
얼마 전에 공감을 못해줘서 미안했던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얘기해주었어요.
“고민하는 순간이 이미 시작인 거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할 수 있어, 친구야,”
제 전성기는요.
엄마는 언제나 희생과 헌신이 당연한 존재이지요.
저희 엄마만 봐도 그래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엄마 혼자서 저와 동생을 키우셨으니
두 딸의 엄마로 살아오셨을 뿐,
엄마만의 인생은 없었죠.
그래서 엄마는 항상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셨어요,
아니 강조하셨어요.
“아이를 낳아도 엄마가 아닌, 너희의 인생을 살아라,
꼭 너희만의 일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을 아이에게 양보만 하지 말고,
엄마가 먼저 좋은 것을 먹고 아이들이 그다음에 먹도록 교육시켜라.”
정작 본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딸들은 그렇게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희생과 헌신의 대명사가 아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두 딸이 되길.
동생과 저는 엄마가 강조한 덕분에 커리어우먼이 되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엄마로 사는 것이더라고요.
지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리하여 저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 꿈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접어두었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다시 꺼내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엄마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그 꿈을 다시 꺼내 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정말 다시 간절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어 졌으니까요.
아직 오지 않은 저의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졌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말해주었어요.
너희들이 있어서 가능한 도전이라고.
“우리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제 전성기는 아직, 안 온 것 같은데요?”
그래야 또, 꿈을 꿀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더, 나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야 앞으로 또한 열심히, 잘, 살고 싶단 열정이 계속될 테니까.
-강세형,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얘들아,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채니 주니 엄마라서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응원해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