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것은 유머였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은 조크였다.” - 아인슈타인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맞서 이기는 게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 니체
신이 나에게 진중함과 유머감각 중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면 나는 반드시 유머감각을 선택했을 거다.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나는 유머감각은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인간이 된 대신, 진지 진중 신중함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 되었다. 나는 늘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알 것도 같다. 내 유년시절과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나는 어려서 웃음이 많지 않은 아이였다. 우리 집은 화목하지 못했고 집에서는 즐거울 일이 많지 않았다. 언제 또 부모님이 다투실까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고 즐겁게 가족 여행을 다녀온 기억은 내게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항상 조심성 있고 신중하다며 가끔은 지나치게 어른스럽다는 표현을 통지표에 남겨주셨다. 그때는 선생님의 칭찬인 줄 알았던 그 문구가 크면서 이해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답게 해맑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없었던 나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담아 그 말을 부모님께 해주셨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유치원과 학교에서 함께 웃고 웃음을 나누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재미있는 말 한마디로 불안과 긴장을 풀고 웃음을 주는 선생님이나 친구를 보며 새로운 안정감과 기쁨을 느꼈다. 유머의 힘이 그 어느 것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도 유머는 나의 것이 아니었지만…
학원 강사였을 때의 일이다. 일타강사는 아니어도 유명한 강사는 유머감각이 필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유머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샀다. 나는 유머러스한 자로 거듭났을까?? 그때 알았다. 나에게는 유머를 장착하는 일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읽고 컬투쇼에서 빵빵 터졌던 이야기도 연습하고)를 준비해서 강의 도중에 짜잔~하고 선보여도 돌아오는 건 웃음이 아니라 웃어줘야 할까 말까 하는 학생들의 표정이었고, 나만 민망하면 다행이지, 듣는 학생들 마저도 민망한 상황을 자꾸만 만들어냈다.요리를 글로 배우면 안 되는 것처럼 유머도 글로 배우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며 학원이라도 다녀볼까… 하던 찰나 나는 엄마가 되어 학원강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재미는 찾기 어려운 진지한 선생님이다. 그래서 입만 열면 빵빵 터지게 만드는 재미있는 선생님들이 너무 부러웠다. 하루는 옆 선생님께서 ‘시바… 견’으로 장난을 치는데 아이들도 까르르까르르 하고 나도 너무 재미있어서 조용히… 몰래… 따라 해보았다. “시바… 시바… 견…” 조용히 연습했는데도 너무 조용했던 교무실에서는 비밀이 없었다. 옆 선생님은 나를 툭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걸로 장난치시면 아이들이 정말 상처받을 것 같은데요?”
진지한 선생님은 이런 장난과 유머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포기였다. 포기하지 않고 재미있으려고 욕심내서 그 유머를 강행했다면 노력이 가상해서.. 혹은 불쌍해서 웃어주는 친구들과 냉정하게 웃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의 나로 봐서는 유머감각이란 이번 생에 달성하기 어려운 난제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보았다. 글을 쓰면서 많은 공감과 위로와 칭찬으로 굉장한 용기와 힘을 얻는데 그중 나의 어깨를 가장 들썩이게 하는 것은 ‘재미있어요’라는 칭찬이다. 태생이 진지모드여서 살면서 오프라인에서 재미있다는 칭찬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글을 보며 재미있어서 웃었다는 표현을 보면, 나에게도 남을 웃게 하는 능력이 있구나.. 하며 뭔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
너무 진지한 유년시절을 보내서 진지함보다는 유쾌함을 지니고 싶은 나도, 열심히 노력해도 웃기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유머를 선보이는 나도, 말로는 유머감각을 장착하지 못했어도 글로는 유머의 끼를 발견했다고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그냥 이런 모든 내가 나인 거다…
요즘 아이들이 화사의 <l love my body>를 따라 부른다. 이 노래가 화사가 부르면 굉장히 섹시한 노래가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이 부르면 뭔가 자기애 강한 귀여운 노래가 된다. ‘난 내 몸을 사랑해. 난 나를 사랑하고 있어.’가 주요 가사다. 나의 비루한 유머감각도… 나의 것이니… 몹시 사랑해 주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신감을 얻어 아이들도 박장대소하도록 웃길 그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