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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Oct 23. 2023

정리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요

헨젤과 그레텔도 놀랄 법한 흔적 남기기  

 살면서 진짜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많이 다를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길을 잃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믿어주지 않는 순간이 있어요. 가끔은 그런 고마운 오해도 걱정이 됩니다. 진짜 내 모습을 알고 실망할까 봐서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런 나도, 이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도, 모두 나인 것을요.   

        



 내 책상과 사물함을 보며 동료가 말한다.

“정리를 참 잘하시는 것 같아 부러워요.”  

   

 정적이 흐른다. 잠시 뭐라 말해야 할지 길을 잃었다.      


“제가 정리를 잘한다고요? 지금 저 보면서 하신 얘기 맞나요? 혹시 저 놀리시는 건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되묻고 싶은 질문이 수십여 개는 되지만 침착을 잃지 않고 말한다.      


“하하, 저 정리 진짜 못하는데요, 여기서라도 정리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요.”     



 

 ‘요리’를 못하는 나의 첫 번째 핑계는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요리를 못해도 된다 했고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해 주시는 대로 열심히 받아먹기만 했다. 그래서 진짜 못하고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고, 재능도 없고 기회도 없고 필요도 없었던 나의 요리실력은 그렇게 자연스레 싹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같은 집안일 부류의 ‘정리’는 어떨까? 내가 정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결혼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상대성을 지닌 동물이어서 늘 나보다 정리를 더 못하는 동생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제발 제자리에 좀 놔라! 누가 데려갈지 참 걱정이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런 동생이 옆에 있어 주고, 혹 정리가 되지 않는 물건들이 보이면 대신 정리해 주는 엄마가 계셨으니 나는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지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정리라는 일도 나와 담벼락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려서 읽은 <헨젤과 그레텔> 동화가 좋았다. 마녀님이 뜨거운 수프에 빠져서 돌아가신 것은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권선징악의 결말도 좋았고 과자의 성이라는 것도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뭔가 바닥에 흘리면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고 하셨는데, 이 표현이 나를 꾸짖는다는 느낌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동화 주인공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너희 헨젤과 그레텔이니?”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이리 말하는 것은 ‘너희들 언제까지 그렇게 부스러기 흘리며 다녀서 엄마가 다 치워줘야 하는 거니?’라는 의미도 담았지만, 나의 아이들도 어릴 적 나와 마찬가지로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일 뿐 이 마음은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남편이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궁금해서 하는 질문 아닌 거 다 알아>. <), 빨대 비닐은 왜 가는 마다 하나씩 남기고 가?(유제품을 좋아하는 나는, 비닐을 벗겨야 나오는 빨대를 하루 평균 2개 이상 씩은 소진하는 편이고 그게 왜 거기 있는지는 나를 보며 한 번씩 바스락 흔들어줘야 안다)”      


 가끔은 남편이 내가 비염 탓에 풀어놓은 휴지들을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휴지통에 넣는다. (남편이 옆으로 고개를 흔드는 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위아래로만 흔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거 다 나중에 한 번에 모아서 버리려고 했어! 마!”라고 하고 싶지만 역시 참는다. 버려준 게 어딘가.      


 친정엄마가 냉장고 앞에 서면 싫은데 또 좋다. 잔소리 들을 것이 뻔하지만 그 고비만 넘기면 비포 에프터가 확실한 깨끗해진 냉장고를 만날 수 있기때문이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잔뜩 남기고 다니는 너희들... 지금 보니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이런 건 안 닮아도 된다고 그리 말했건만...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도,

정리 잘하고 싶은 사람이고파 잘하는 척 애쓰는 나도,

어제 나름 대청소라는 걸 했지만 티도 안 나게 감쪽같이 끝내버린 나도...

어쩌겠는가 모두 나인 것을...


내 방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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