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배우다. 삶을 배우다.
나는 영어가 유난히 싫었다.
알파벳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배웠다.
집집마다 LA 사는 친척 하나쯤은 다 있던데 나에게는 그런 친척도 없어 한국말 말고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사는 인생이 있다는 생각을 못 해 봤다. '너도 유학 가고 박사 하고 교수도 할 수 있다'며 자식들의 한계를 넓혀주고 밀어주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부모님을 갖지도 못했다. 머리는 이과쪽이라 언어적 소질도 없고, 외우는 걸 너무 못해 단어 외우기도 쉽지 않았다. 일류대를 가고 싶다거나 의대나 법대에 가겠다는 야망 같은 것이라도 있었으면 억지로라도 했겠으나 그런 것도 아니니 굳이 재미없는 영어를 억지로 할 동기도 없었다.
영어가 싫어 해외여행도 안 가겠다고 하던 내가 급작스레 결혼하고 싶어진 오빠가 공교롭게도 몇 개월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상태일 것은 또 뭐람. 인생은 참 예측 불가이다. 그 오빠가 유학을 간다고 할 때만해도 그는 그저 내 레이더망 안에 있던 괜찮은 남정네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그나마도 비행기 타고 떠난 순간 (그 이유 하나로) 내 레이더망에서 자동탈락 되었건만 일이 되려니 그렇게 순식간에 되더라.
그다지 도전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딱 공무원, 선생이 체질이라고 생각하던 우물 안 개구리가 갑자기 미국으로 시집을 가더니 남부 휴스턴 4년, 동부 필라델피아 2년, 한국에 와 동탄 2년, 전북완주 7년, 온 동네를 누비다 15년 만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부러워했을 미국 생활이 내게는 쉽지 않았고, 싸이월드에 매일 올리던 사진처럼 실상이 그리 아름답지도 않았다. 6년만에 그리던 한국에 왔으나, 같은 한국말을 써도 다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만큼 생경한 여러 지역을 살아내야 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던만큼 많이 깨졌고, 선택인듯 보였으나 신의 섭리였던 그 모든 여정에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까.
운명에 의해 내가 놓였던 그 낯선 땅에서의 경험들.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더 늦기전에 의미를 찾아 남겨둘 때가 된 것 같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내게 새로운 의미로 피어난 푹 삭은 단상들, 그것들을 글로 쓰고 싶다.
이렇게 시작된 글쓰기에 어떤 거창한 목적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나만의 키워드는 하나 있다.
배움.
그 많은 장소와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사람에 대해 배웠다. 사람을 통해 배웠다. 사람이 모여 만든 문화에 대해 배웠고, 그 문화 속에서 달리 읽히는 나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래서 이 글들 안에는 나에게 배움이 되었던 사람, 사건, 깨달음이 있다. 나의 배움에 대한 글이 누군가에게 또다른 배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기도도 함께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