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읕 Jan 18. 2019

꼰대


저 사람이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른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순두부찌개 안의 애꿎은 달걀 노른자를 툭 터뜨린다

머리속에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이 번진다


직장 생활에서 어떤 점심식사 자리는

프리젠테이션보다 훨씬 중요한 업무가 되곤 한다

특히나 임원을 모시고 하는 식사라면 더더욱


너무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말이 많아서도 위험하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필연적으로 실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아놓고 

30분째 연설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부단한 노력과 때마침 찾아온 행운으로

동기들보다 한 발, 아니 두 발쯤은 앞서 임원이 된 사람


멀리서 봤을 땐 눈부신 후광에 가려있었지만

가까이서 단어와 문장을 섞고 생각과 신념을 주고 받자

대기업 임원이라는 포장지에 가려진 진짜 모습이 보인다 


씨X, 그X끼...

일부러 뱉어내는 상스러운 단어와 마초적인 말투

자기는 법만 허락한다면 퇴근시간 따윈 개나 줘버리고

직원들과 다같이 주말에도 내내 일하고 싶다고

그만큼 일을 사랑하고 열정 넘친다고 

전근대적인 마인드를 자랑인양 떠벌인다


절대 사양하고 싶다

그런 뒤틀어진 열정은


임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비가 있었을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존중은 한다

그러나 존경은 없다


이 사람을 보고 

존경은 저절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성취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계산대 앞에 선 임원의 뒷모습을 본다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기어이 가장 먼저 하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연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