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4일 월
지금은 새벽 3시 17분
잠에서 깨서 코코아를 한 잔 타고 맥북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은 옷방 한 켠에 자리 잡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재택 기간이 길어지면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임시 작업 공간이다. 지오가 태어나면서 짐이 많아지다 보니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가 참 어려운데 지금 앉아있는 방이 딱 그 단편을 잘 보여준다. 문을 열면 문 뒤편에 바로 책상이 있다. 여러 짐을 욱여 넣다 보니 책상 모서리에 방문이 부딪혀 문은 대략 60도 내외 밖에 열리지 않는다. 책상 옆으로는 스탠드형 김치냉장고가 있고 그 옆에는 대방동 신혼집 신동아 아파트에 들어갈 때 마련했던 나무옷장 한칸이 있다. 그리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서, 책상 뒤편에는 두 칸 짜리 붙박이 옷장이 있다. 원래는 붙박이장이랑 나무옷장만 있던 곳이었다.
소영이랑 나는 밖에서 일하고 끼니도 밖에서 해결하고 올 때가 많아서 굳이 집에 큰 냉장고가 필요 없었는데 지오가 태어나고 보니 이 작고 소중한 존재를 제대로 건사하기 위해서는 큰 냉장고가 필수였다. 집에는 한 칸짜리 냉장고 밖에 없는데 말이다. 큰 냉장고로 바꿀까 고민 끝에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들였는데 이걸 놓을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결국 옷방에 자리잡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져서 김치냉장고 옆에 또 객식구인 책상이 떡하니 자리 잡았고. 쓰다 보니 이 방이 마침내 왜 이런 구조가 되었는지 나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됐다. 그전에는 이 문제를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나저나 코코아가 벌써 다 식었다. 이것 참 구조도 구조고 춥기도 매우 추운 방이다. 요 며칠 이래적인 한파인데, 사실 이 방은 평일에 재택근무가 아니면 자주 들를 일이 없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가스비도 아낄 겸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고 있다. 지금 기온을 보니 바깥온도는 영하 10도. 이 방 온도는 17도였다가 보일러를 틀자마자 바로 18.5도로 올라갔다. 보일러 효과도 있고 내가 내뿜는 숨도 영향이 있겠지.
새벽에 왜 이 특이하고 추운 방에 앉아있는지 스스로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어쩌면 매일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거꾸로 의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삶의 변곡점마다 글로 위로 받고 그래서 글쓰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던 순간들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지금은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막내 이모가 던졌던 어떤 질문에 우유부단한 생래적 성격 덕에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라는 류의 대답을 던졌을 때 “표현이 엄청 시적이다”라는 이모의 흘리듯 뱉은 말이 씨앗이 되어 초딩이던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아 글에 대한 열정을 싹 틔웠던 순간. 대학교 수시에 합격하고 합격 수기랍시고 열심히 적어서 교내 책자에 글을 실었던 순간. 제대 전날 친하게 지내던 소대장과 BOQ에서 몰래 소주를 마시고 내무반에 돌아와 모두들 잠든 그 순간에 수양록에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선언적으로 적었던 순간.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 생각하고 끄적였던 긴 시간들, 블로그에 쓴 서평을 하루에 몇 천명이 들어와서 보고 댓글을 달아줬던 일, 시를 써보겠다고 출퇴근길에, 자주 들르던 카페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시간에, 심지어 잠든 와중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던 사색 그리고 글글글.
요즘엔 밥벌이 한다는 핑계로, 지오 키운다는 핑계로 이런 일이 너무나 옅어졌다. 색이 바래고 기억에서도 바랜 느낌이다. 이런 얘기를 먼 옛날 얘기하듯 꺼내게 된다. 당연히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함에도.
어쩌면 이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 방의 구조도 글을 쓰겠다는 내 습관도 아직은 뒤죽박죽이고 정리가 안됐지만, 방 구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고 이 오밤중에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뿌듯함이 느껴진다. 매일 이시간에 이 뿌듯함을 느끼도록 스스로 다그쳐야겠다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