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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읕 Jan 06. 2021

#3. 초월적

2021년 1월 6일 수

D - 15,634


오늘부터 디데이를 같이 적는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나한테 주어진 날짜가 며칠 남았는지 매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예전 어디에선가 보고 한동안 해본 적이 있는데 다시 시작한다. 예전에는 노트에다 적었었는데 그때는 17,000대였네. 이렇게 보니까 벌써 몇 년이나 훌쩍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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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벽 3시 21분.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재택이라 좀 헐렁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가짐인데 사무실에 나가는 거 보다 배로 바쁘고 정신 없다. 어느 순간 보면 끼니 때도 지났는데 노트북 앞에 앉아있기도 한다. 


재밌는 건 재택 덕분에 이제 비대면 미팅에 익숙해 졌다는 거다. 초반에는 서로 오디오가 물리고 양쪽다 다시 정적이 흐르고 다시 서로 말하려고 오디오가 물리고,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는데 이제는 눈치껏 낄끼빠빠가 익숙하다. 


아무튼,

오늘 비대면 회의를 하면서 문득 느낀 거 하나. 그리고 스스로 던져본 질문.

나는 방어적인가? 그래서 어쩌면 공격적인 사람일 수도 있는가?


최근에 새로 업무를 하나 맡게 돼서 인수인계 중이다. 내 딴에는 업무를 받으면서 던져봄 직한 당연한 질문들이, 상대방에게는 왜 이런 판단을 내리고 왜 그런 프로세스로 진행했는지 질책과 의심이 되어 도착하기도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던진 건 직구지만 받는 사람은 변화구로 느낀다면 정말이지 내 요량으로 어쩔 도리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업무의 시작과 끝을 알고 싶을 뿐인데 상대방은 그간 일을 보면서 크게 잘못한 게 없음에도 치부를 감추려는 듯 조심스럽고 웅크리게 된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어릴 때 뽑기놀이하듯 화법을 조심스럽게 이어가게 되고 그럼에도 상대에 따라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 그 마음다침은 자기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응어리가 되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표출되어 가시 돋힌 말이 되는데 오늘 미팅을 한 사람은 후자 쪽이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이 아니라 다시 물음을 던지는 식으로 대화는 전개된다. 공격적. 그런데 사실 내가 이 사람을 공격적인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오히려 방어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답은 미뤄두고 본질과는 동떨어진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행위가, 어릴 때 동물탐험 신비의 세계 오프닝 타이틀에 나오던 그 목도리도마뱀처럼 위협 앞에 목도리를 펼치는 방어적 행위는 아니었을까하고 말이다. 


뭐 그 사람이 공격적인가 방어적인가를 정의 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가 나에게 약간의 파장을 일으켰는데, 나는 평소에 어떤 사람인가를 되돌아 보게 된 거다. 상대가 누구든 나는 방어적인가, 공격적인가에 양자택일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초월적(회피성과는 분명히 거리를 둔) 상태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 하루다.


훌륭한 됨됨이를 갖추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고자 매일 매순간 깨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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