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7일 수요일
D-15,633
지금은 새벽 5시 26분.
요 며칠 잠이 부족했는지 오늘 한 방에 몰아서 다 잤다.
지오 재우면서 밤 9시 남짓에 잠들었는데 5시에 깼으니 8시간 정도를 잔 거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10시간씩도 자곤 했는데 근래에 들어 이만큼 푹 잔 건 오랜만이다. 뭐 물론 중간중간 지오가 울어서 잠깐씩 깨긴 했지만.
아기가 자라는 걸 바라보고 있자면 신기하다. 내가 감자, 감자 따위의 단어를 열심히 반복하면 인내심을 가지고 입모양을 몇 날 며칠이고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깜짜하고 발음하고 마는 거다. 이게 돌이 지나서 14~15개월 정도였던 듯하다. 21개월인 지금은 두 세 단어를 붙여서 얘기하고 조사를 쓸 줄 안다. 아빠가 밥 먹고 있지?하고 물어보면 아빠가 아빠가하고 대꾸한다. 삐약삐약 병아리, 음메음메 송아지, 타당타당 사냥꾼 - 하는 동물농장(?) 동요를 틀어주면 삐야삐야, 음메음메, 따다따다하고 리듬감 있게 곧잘 따라 부른다.
게으름의 소치로 아기가 크는 모습을 기록해 주지 못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매일 새벽에 하루의 기록을 남길 계획이니 이 때에 지오 기록도 짧게라도 함께 남기자. 어제는 일이 바빠 많이 놀아주지는 못했는데, 때가 되면 일하는 방으로 들어와서 내 오른쪽 허벅다리 옆에 얼굴을 파묻고 “꼭꼭” 거리면서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그러고 나서 저녁엔 지오가 좋아하는 닭고기 텐더에 시금치 나물, 그리고 낮에 먹던 매생이국과 동그랑땡을 더해서 줬다. 낮에 열심히 놀았는지 잘 받아먹었다. 저녁을 먹기 전부터 콩밥을 먹고 싶다고 꽁밥꽁밥 노래를 불렀는데 콩을 미리 불려놓지 못해서 흰쌀밥을 줬다.
이 소중한 존재를 보고 있자면 기쁨, 환희, 벅참, 사랑스러움 등의 감정과 슬픔, 안쓰러움, 애달픔, 처연함 따위의 양가적 감정들이 뒤섞여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묘한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김영승 시인은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 서럽다 /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 밍키를 보면 / 서럽다”라고 했는데 저 서럽다고 이야기한 부분이 지오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일부분 맞닿아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김영승 시인처럼 서러움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내 감정을 대표할 수 없는데 단 하나 확실한 것은, 한동안은 온전히 나의 힘에 기대어 자랄 이 작은 존재를 바라보고 있자면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게 뭐든 간에 내가 지니고 있는 감정들이 최고조로 증폭되고 충만해 진다는 거다. 나를 가득 채워주는 존재임에는 틀림 없다.
덧)
작년에 읽은 책을 정리하던 중에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에 밑줄을 긋고 메모해 놓은 걸 다시 보게 됐다.
“자꾸만 되묻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의 책임은 이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는 일”
살아온 날들 가운데에 운이 좋게도 가족을 얻고 지오를 남겼다. 스토너를 읽으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했던 지점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 가족, 우리 지오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날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도 열심히 고민해 봐야 겠다.